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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2부 – 밤의 노래 (Das Nachtlied)
밤이다.
이제 모든 솟구치는 샘물들이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나의 영혼 또한 솟구치는 샘물이다.
밤이다.
이제서야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난다.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이의 노래다.
내 안에는 가라앉지 않는 것, 가라앉힐 수 없는 것이 있어 소리 높여 터져 나오려 한다.
내 안에는 사랑을 향한 갈망이 있어, 스스로 사랑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나는 빛이다— 아, 차라리 내가 밤이었으면!
하지만 이것이 나의 고독이다.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아, 내가 어둡고 밤과 같았더라면! 빛의 젖가슴에 입을 대고 마음껏 빨아 마실 텐데!
그리고 저 위에 있는 너희 작은 반짝이는 별들과 반딧불이들을 축복할 텐데!— 너희가 주는 빛의 선물에 기뻐하면서.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빛 속에서 살아간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들을 스스로 다시 삼킨다.
나는 받는 자의 행복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종종 꿈꾼다— 차라리 훔치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될 것이라고.
이것이 나의 가난이다— 나의 손이 주는 일을 결코 멈추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질투다— 기다리는 눈망울들과, 그리움으로 밝아진 밤들을 보는 것.
오, 베푸는 모든 자들의 불행이여! 오, 나의 태양이 어두워짐이여!
오, 갈망 자체를 갈망하는 욕망이여! 오, 가득 찬 속의 굶주림이여!
그들은 나에게서 받는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들의 영혼에 가닿는가?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가장 작은 틈이야말로 가장 건너기 어려운 법이다.
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굶주림이 자라난다.
내가 빛을 비추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고, 내가 베푼 이들에게서 되빼앗고 싶다.— 나는 그렇게 심술궂음(Bosheit)을 갈망한다.
이미 손이 내밀어졌을 때 그 손을 거두며,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면서도 떨어지는 순간에 머뭇거리며— 나는 그렇게 심술궂음을 갈망한다.
나의 이 충만함은 그런 복수를 꾸민다. 나의 고독 속에서 그런 뒤틀린 마음이 샘솟는다.
베푸는 나의 기쁨은 베풀다가 스러졌고, 나의 미덕은 그 넘쳐남에 스스로 지쳐버렸다!
언제나 베푸는 자는 위험에 처한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릴 위험에. 언제나 나누어 주는 자의 손과 마음은 끝없이 나누어 주느라 굳은살이 박인다.
나의 눈은 더 이상 간청하는 자의 부끄러움에 눈물 흘리지 않는다. 나의 손은 선물이 가득 담긴 손의 떨림을 느끼기에는 너무 굳어버렸다.
내 눈의 눈물은 어디로 갔는가, 내 마음의 부드러움은 어디로? 오, 베푸는 모든 자들의 고독이여! 오, 빛나는 모든 자들의 침묵이여!
수많은 태양들이 황량한 우주 공간을 맴돈다. 어두운 모든 것들에게 그들은 자신의 빛으로 말하지만— 나에게는 침묵한다.
오, 이것이 빛이 빛나는 존재에게 품는 적의(敵意)로구나. 빛은 무자비하게 자신의 궤도를 돈다.
빛나는 존재에게 부당하고, 태양들에게조차 차갑다— 모든 태양은 그렇게 운행한다.
폭풍처럼 태양들은 자신의 궤도를 날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운행 방식이다.
자신의 가차 없는 의지를 따르는 것, 그것이 그들의 차가움이다.
오, 너희 어둠의 존재들, 밤의 자식들이여, 오직 너희만이 빛나는 것으로부터 따스함을 만들어낸다!
오, 오직 너희만이 빛의 젖가슴에서 젖과 위안을 마신다!
아, 내 주위는 얼음이다— 내 손은 얼음에 데인다!
아, 내 안에 갈증이 있다— 너희의 갈증을 갈망하는 갈증이!
밤이다— 아, 내가 빛이어야만 하다니! 밤을 향한 갈증이여! 그리고 고독이여!
밤이다— 이제 나의 갈망이 샘처럼 터져 나온다.— 말하고 싶은 갈망이다.
밤이다. 이제 모든 솟구치는 샘물들이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나의 영혼 또한 솟구치는 샘물이다.
밤이다. 이제서야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난다.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이의 노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노래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밤의 노래』 해설
「밤의 노래 (Das Nachtlied)」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의 가장 내밀하고 서정적인 고백을 담은 시(詩)와 같은 장입니다.
이 노래는 철학적 명제나 교훈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빛나는 존재로서 겪는 고독과 역설적인 고통,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아름답고 애절한 언어로 노래합니다.
1️⃣ 빛의 존재로서의 고독: 밤을 갈망하는 빛
☀️ “나는 빛이다— 아, 차라리 내가 밤이었으면! 하지만 이것이 나의 고독이다.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규정합니다.
여기서 빛은 지혜, 깨달음, 창조적 생명력을 상징하며, 그는 타인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빛남은 역설적으로 그를 깊은 고독 속에 가둡니다.
그는 빛을 받는 “어둠의 존재들, 밤의 자식들”이 자신과 달리 “빛의 젖가슴에서 젖과 위안을 마신다”고 부러워하며, 자신은 오히려 “받는 자의 행복을 알지 못한다”고 탄식합니다.
빛은 모든 것을 비추지만, 정작 그 자신은 위로받을 어둠, 돌아갈 밤이 없습니다. 이것이 빛나는 존재의 고독입니다.
💡 철학적 맥락: 니체는 여기서 위버멘쉬(초인) 혹은 위대한 창조자가 겪는 비극적 고독의 일면을 드러냅니다.
그는 타인에게 빛(가르침, 가치)을 베풀지만, 그 빛을 되돌려 받거나 동등하게 교감할 대상을 찾기 어렵기에 더욱 깊은 고독과 소외감 속에 놓입니다.
2️⃣ 풍요 속의 결핍, 넘침 속의 갈망: 베푸는 자의 역설
💔 “베푸는 나의 기쁨은 베풀다가 스러졌고, 나의 미덕은 그 넘쳐남에 스스로 지쳐버렸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내면이 “솟구치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넘친다고 노래합니다.
그의 풍요로움—지혜, 통찰, 사랑—은 타인에게 아낌없이 쏟아지지만, 이 끝없는 베풂은 역설적으로 공허함과 피로감(“스스로 지쳤다”), 심지어는 뒤틀린 갈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 속에서 굶주림이 자란다”고 느끼며, 자신이 빛을 비추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에게서 되빼앗고 싶은 “심술궂음(Bosheit)”을 갈망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선함과 베풂이라는 행위의 과잉이 오히려 영혼의 균형을 깨뜨리고 예상치 못한 파괴적 충동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심리적 통찰: 니체는 과도한 베풂이나 도덕적 이상이 오히려 인간성을 소진시키고 뒤틀린 욕망을 낳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늘 나누는 자의 손과 마음은 끝없이 나누어 주느라 굳은살이 박인다”는 구절이나 “나의 눈은 더 이상 간청하는 자의 부끄러움에 눈물 흘리지 않는다”는 고백은 이러한 정서적 마모의 생생한 증거입니다.
3️⃣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단절: 건널 수 없는 틈
“그들은 나에게서 받는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들의 영혼에 가닿는가? 주기와 받기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가장 작은 틈이야말로 가장 건너기 어려운 법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베푸는 빛과 선물이 받는 자의 영혼 깊은 곳까지 진정으로 가닿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의 가르침이나 사랑은 표면적으로 받아들여질 뿐, 그 근원적인 의도와 깊이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합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의 틈”은 오해를 넘어 존재론적인 단절을 상징하며, 특히 “가장 작은 틈이야말로 가장 건너기 어려운 법”이라는 말은 가장 가까워 보이는 관계 속에서도 깊은 소통의 어려움이 존재함을 암시합니다.
💡 문학적 장치: “솟구치는 샘물”은 차라투스트라의 넘쳐흐르는 창조성과 베풂을 비유하지만, 샘물이 아무리 솟아나도 그것을 마시는 존재와의 근원적인 소통과 이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고독한 창조자의 비애를 담고 있습니다.
4️⃣ 빛나는 자들 간의 적대와 침묵: 고독한 태양들의 운행
☀️ “오, 이것이 빛이 빛나는 존재에게 품는 적의(敵意)로구나. 빛은 무자비하게 자신의 궤도를 돈다.”
니체는 우주 공간을 도는 “수많은 태양들”의 이미지를 통해, 빛나는 존재들(위대한 개인들, 혹은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겪는 근원적인 고립을 묘사합니다.
태양들은 각자 빛을 발하며 황량한 공간을 돌지만, 서로에게 따스함이나 위안을 주고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빛나는 존재는 다른 빛나는 존재에게 “부당하고”, 심지어 “태양들에게조차 차갑다”는 표현은 이 고독과 단절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가차 없는 의지”에 따라 자신의 궤도를 돌 뿐입니다.
💡 심오한 은유: 이는 뛰어난 지혜와 힘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 깊이 교감하거나 연대하기 어려운 실존적 조건을 상징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 역시 빛나는 존재로서, 동류(다른 태양들)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을 자각합니다.
5️⃣ 밤의 고백: 빛의 갈증과 사랑의 노래
“밤이다— 이제 나의 갈망이 샘처럼 터져 나온다.— 말하고 싶은 갈망이다.”
밤은 차라투스트라가 낮 동안의 빛(자신의 역할, 사명) 속에 억눌렀던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을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빛으로서의 고독 속에서 숨겨왔던 욕망—어둠이 되고자 하는 갈망, 받지 못하는 자의 슬픔, 연결되고자 하는 갈망—이 밤의 어둠 속에서 “샘처럼 터져 나옵니다.”
이 노래가 “사랑하는 이의 노래”로 시작되고 끝맺는다는 점은, 그의 근원적인 고독이 결국 사랑과 소통,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과 뗄 수 없이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 문체적 특징: 반복되는 “밤이다”라는 구절과 “솟구치는 샘물”, “사랑하는 이의 노래”라는 이미지는 이 장 전체에 서정적인 운율과 깊은 우수의 분위기를 부여합니다.
이를 통해 니체는 철학적 사유를 감성적인 고백이자 한 편의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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