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西遊記 Journey to the West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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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장
평정산(平頂山) 공조(功曹)가 소식을 전하고,
연화동(蓮花洞) 목모(木母)가 재앙을 만나다.
삼장은 손오공을 되찾은 후, 사제들이 한마음이 되어 서쪽을 향해 길을 나섰다.
보상국(寶象國)에서 공주를 구하고, 군주와 신하들의 환송을 받으며 성 서쪽으로 나왔다.
길을 따라 걸으며 허기를 달래고, 목마름을 채우고, 밤에는 머물고 새벽이면 길을 떠났다.
마침 삼월의 봄기운이 가득한 시기였으니, 그때의 풍경은 이러했다.
부드러운 바람에 실버들 푸르게 물들고,
꽃피는 풍경이 한창이라 눈길을 사로잡네.
새들의 지저귐이 봄을 재촉하고,
따스한 햇살에 만발한 꽃들이
땅 위에 온통 향기를 뿌리네.
해당화 정원에 제비 두 마리 날아들고,
바로 지금이야말로 봄을 만끽할 때라.
화려한 도시 거리마다
비단 옷자락과 악기 소리 울리고,
사람들은 풀잎을 엮어 놀며 술잔을 돌리네.
사제들이 봄날의 정취를 즐기며 길을 걷던 중, 앞길을 막는 산이 나타났다.
삼장은 말을 멈추며 말했다.
“제자들아, 조심해라. 앞에 높은 산이 있으니, 호랑이나 늑대 같은 짐승이 나올까 두렵구나.”
손오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 출가한 사람은 집안 일 걱정하지 않는 법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오소사(烏巢) 승려의 《심경(心經)》에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헛된 꿈과 착각에서 벗어난다’고 하였지요.
또 이런 말도 있지요.
‘마음속 때를 깨끗이 쓸고
귀를 막는 먼지를 씻어내라.
고난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스승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오공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곁에 있으니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안전할 것입니다.
뭐가 두렵겠습니까?”
삼장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을 멈춘 채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내가 그날 명을 받아 장안을 떠나며,
오직 서방으로 가 부처님을 뵙기를 바랐다네.
사리탑 속 황금빛 석가상을 떠올리며,
옥빛 머리칼 같은 자비를 갈망했었지.
이름 없는 물길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어느 누구도 오르지 않은 산들을 지나왔다네.
겹겹이 펼쳐진 안개와 물결 사이,
언제쯤이면 이 몸이 편히 쉴 수 있을까?
사제들이 봄의 경치를 즐기며 길을 가던 중, 갑자기 커다란 산이 길을 가로막았다.
당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조심하거라. 앞에 높은 산이 있으니 혹시라도 호랑이나 이리 같은 맹수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자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출가한 사람은 집안 일 걱정하지 않는 법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오소사(烏巢) 승려의 《심경(心經)》에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헛된 꿈과 착각에서 벗어난다’고 하였지요.
그러니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귀가 듣는 세속의 먼지를 깨끗이 씻으십시오.
고난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인간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없는 법이니 두려워 마십시오.’
제가 곁에 있으니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안전할 것입니다.
맹수가 대수겠습니까?”
당승은 말 고삐를 다시 쥐며 옛날을 떠올리듯 읊조렸다.
“내가 그해 칙명을 받고 장안(長安)을 떠날 때,
서쪽으로 가 부처님을 뵐 날만을 꿈꾸었지.
사리국(舍利國)의 황금빛 불상과,
탑 속에서 빛나던 옥빛 광채를 떠올리며…
세상 끝의 이름 없는 물줄기를 찾아 헤매고,
사람들이 닿지 못하는 깊은 산을 넘나들며…
연기 가득한 물결 속을 중첩된 산들이 가로막았건만,
이 몸이 언제쯤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손행자는 스승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몸이 한가로워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세속의 인연이 모두 끊어지면 세상만사가 공허해지는 법입니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한가로운 날이 찾아오겠지요.”
장로는 그 말을 듣고 근심을 덜고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말의 고삐를 쥐고 은빛처럼 빛나는 말을 재촉하며, 옥빛 용처럼 힘차게 말을 몰아 길을 서둘렀다.
사제들은 마침내 산에 올랐지만, 그곳은 생각보다 훨씬 험준했다.
정말로 절벽과 바위가 뒤얽힌 가파른 산이었다.
그 풍경은 이러했다.
장엄하고도 험준한 산봉우리,
하늘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봉우리들.
굽이치는 깊은 계곡 아래로는
물이 넘실대며 거대한 이무기가 몸을 뒤척이고,
외로운 절벽 가장자리에는
울창한 숲 속에서 범이 꼬리를 흔들며 나타난다.
위를 올려다보니 산봉우리들이 파란 하늘을 뚫고 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깊은 계곡이 푸른 연못처럼 고요하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사다리 같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함정 같다.
참으로 기이한 봉우리와 절벽,
그야말로 가파른 바위산이다.
이곳에선 약초를 캐러 온 사람조차 길을 나서기 두려워하고,
땔감을 구하는 나무꾼도 한 걸음 내딛기 어렵다.
산양과 들말은 갈팡질팡하며 뛰어다니고,
영리한 토끼와 산소는 마치 전열을 갖춘 듯 배치되어 있다.
높디높은 산은 햇빛을 가리고 별자리를 덮어,
언제나 요괴와 사나운 늑대가 출몰한다.
풀숲 길은 온통 뒤엉켜 말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으니,
이런 곳에서 어찌 뇌음(雷音)에 도달해 부처님을 뵐 수 있단 말인가?
장로는 말의 고삐를 당기고 험난한 산세를 둘러보았다.
발걸음을 떼기조차 어려운 가파른 언덕 위에 한 나무꾼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모습은 이러했다.
머리에는 오래된 푸른 모자를 쓰고 있었고,
몸에는 검은색 거친 누비옷을 입고 있었다.
그 푸른 모자는 연기와 햇빛을 가리기에 딱 좋았고,
누비옷은 그를 근심과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듯했다.
그의 손에는 잘 갈린 강철 도끼가 들려 있었고,
도끼날에 잘린 마른 장작들은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는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인생의 굴곡이나 영예와 치욕에 크게 얽매이지 않은 듯,
그저 자연에 순응하며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나무꾼은 언덕 아래에서 마른 나무를 베고 있었다.
도끼를 내리치던 그는, 동쪽에서 다가오는 장로 일행을 발견하고 손을 멈췄다.
그는 도끼를 옆에 내려놓고 숲에서 걸어나와 근처의 바위 절벽 위로 올라섰다.
그는 장로를 향해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서쪽으로 향하는 장로님, 잠시만 멈추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산에는 독하고 흉악한 요괴들이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그들은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들입니다!”
나무꾼의 말을 들은 장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신이 아득해진 그는 말 안장에서조차 몸을 가누지 못하며 떨었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손행자를 부르며 외쳤다.
“저 나무꾼이 말하길 이 산에는 끔찍한 요괴들이 있다 하니,
누가 가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오겠느냐?”
손행자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스승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가서 모든 것을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손오공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길을 올라 나무꾼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형님, 수고 많으십니다.”
나무꾼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장로님,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습니까?”
손행자가 솔직히 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동토에서 서천으로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입니다.
저기 말에 탄 분이 저희 스승님인데, 다소 겁이 많으십니다.
방금 큰형님께서 독한 요괴와 흉포한 마귀들이 있다고 경고해 주셔서 더 자세히 여쭙고자 왔습니다.
그 요괴들은 얼마나 오래된 놈들입니까?
싸움에 능한 자들입니까, 아니면 풋내기들입니까?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산신령과 토지신에게 명령서를 보내어 그들을 즉시 추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무꾼은 이 말을 듣고 하늘을 보며 크게 웃었다.
“당신이 참으로 허풍스러운 승려로군요!”
손오공은 진지한 얼굴로 반박했다.
“허풍이라뇨! 저는 진심입니다.”
나무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진심이라면서 어찌 요괴들을 추방한다고 큰소리를 칩니까?
손행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저 요괴들의 기를 살려 주는군요!
괜히 길을 막아서는 것을 보니, 설마 그들과 친척이나 친구 관계인 건 아니겠지요?”
나무꾼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제멋대로군요!
나는 친절히 경고해 주려고 했을 뿐인데, 되레 나를 요괴와 한통속으로 몰다니!
내가 요괴들이 어디에 사는지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그들을 어떻게 추방하겠다는 거요?
또, 어디로 추방할 생각이오?”
손행자는 당당하게 답했다.
“하늘의 요괴라면 옥황상제에게, 땅의 요괴라면 토지신에게!
서쪽의 요괴는 부처님께, 동쪽의 요괴는 성인께!
북쪽은 진무대제께, 남쪽은 화덕성군께!
물속의 교룡은 바다의 주인에게, 귀신들은 염라대왕께 보내겠습니다!
각자 관할하는 곳이 정해져 있으니,
제가 명령서를 한 장 써서 밤새 그들을 날아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무꾼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같은 풍랑 속의 떠돌이 중이 그 정도 법술로 요괴를 제압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 산은 평정산(平頂山)이라고 하는데, 동서로 이어진 길이 600리나 됩니다.
이곳에 연화동(蓮花洞)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그 안에는 두 명의 흉악한 요괴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스님들의 그림을 그려 모양을 기록하고, 이름을 수소문하여 한 명씩 잡아먹습니다.
당신들이 당나라 사람이라니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겠지요.”
‘당(唐)’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소.”
손오공은 들으면서도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과연 좋은 운수로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어떻게 먹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무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먹는 방법을 알아서 무엇하려 하십니까?”
손오공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만약 머리를 먼저 먹는다면 그건 괜찮은 일이지만, 다리를 먼저 먹는다면 그건 곤란하겠지요.”
나무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머리를 먼저 먹는 건 괜찮고, 다리를 먼저 먹는 건 왜 곤란하다는 겁니까?”
손오공은 능청스럽게 답했다.
“머리를 먼저 먹는다면 한 입에 끝나니 제가 고통을 느낄 새도 없겠지요.
하지만 다리를 먼저 먹는다면 다리를 씹히고 나서도 한참 동안 살아있을 테니, 그 고통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나무꾼은 말문이 막혀 한숨을 쉬었다.
“중이여, 그 요괴들이 그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사람을 먹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잡아 철창에 넣고 통째로 쪄서 먹을 겁니다.”
손오공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거라면 더 좋군요. 고통은 덜겠지만, 답답함은 좀 느끼겠지요.”
나무꾼은 손오공의 말에 피곤한 듯 고개를 저었다.
“농담은 그만두시오!
이 요괴들은 다섯 개의 신비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신통력이 대단합니다.
당신들이 당나라 스님을 무사히 보호하려면, 몇 번은 어지러워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오.”
손행자가 물었다.
“몇 번이나 어지러워진다는 말입니까?”
나무꾼이 대답했다.
“세네 번은 어지러워질 테지요.”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우리는 일년에 칠팔백 번쯤 어지러워지는 일이 다반사니,
세네 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오!”
손오공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스승 삼장을 지켜내겠다는 결심뿐이었다.
그는 나무꾼을 가볍게 밀쳐내고 발걸음을 돌려 산비탈 아래로 내려갔다.
말고삐를 쥐고 서 있는 삼장 앞에서 그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별일 아닙니다.
여기 요괴라 해봐야 한두 마리쯤 되는 놈들입니다.
이곳 사람들이 겁이 많아 그것을 마음에 두고 떠들 뿐이지요.
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어서 길을 가시지요.”
삼장은 손오공의 말을 듣고 마음을 놓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가던 중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나무꾼이 사라지고 없었다.
장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까 그 경고하던 나무꾼은 어디로 간 것이냐?”
팔계(八戒)가 대답했다.
“우리 운이 나빠서 대낮 귀신을 만난 게 분명합니다.”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나무나 하러 숲 속으로 들어갔겠지요.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제가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손오공은 자신의 불꽃 같은 눈과 황금빛 눈동자을 번쩍이며 산을 넘고 능선을 살펴보았지만,
나무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자, 구름 속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 자는 다름 아닌 일직공조(日值功曹)였다.
손오공은 즉시 구름을 타고 올라가며 그를 꾸짖었다.
“이 녀석아, 너는 무슨 말을 하러 오면서 그렇게 숨바꼭질하듯 행동하느냐?
왜 솔직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요상하게 변신해서 나를 놀리느냐?”
놀란 일직공조는 황급히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며 말했다.
“대성(大聖)님, 늦게 알리게 되어 용서를 구합니다.
하지만 그 요괴들은 정말로 신통력이 대단하고 변신술에 능합니다.
부디 지혜를 발휘해 스승님을 잘 보호하십시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서천(西天)으로 가는 길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오공은 일직공조의 말을 듣고 그를 쫓아내며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그는 구름 위에서 몸을 낮춰 산으로 돌아왔다.
산길 위에서는 삼장과 팔계, 오정이 무리를 지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방금들은 일직공조의 말을 스승님께 그대로 전한다면,
스승님은 겁을 먹고 울음부터 터뜨리겠지.
그렇다고 사실을 숨긴 채로 계속 길을 재촉하는 것도 문제야.
‘처음 들어간 갈대밭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했으니,
만약 요괴에게 스승님이 붙잡히면 또다시 내 손발이 묶일 테니까.
차라리 팔계를 앞세워 먼저 요괴와 한바탕 붙어 보게 해야겠다.
만약 그가 요괴를 이기면 그것도 그 녀석의 공로고,
그렇지 못하고 요괴에게 붙잡히면 내가 나서서 구하면 되지.
그러면 내 실력을 드러낼 기회도 될 테니까.’
손오공은 생각을 이어갔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팔계가 귀찮음을 피하려 할 거라는 점이지.
스승님 또한 팔계를 감싸며 제대로 시키지 않을 거야.
내가 적당히 꾀를 부려 녀석을 이끌어 내야겠다.’
오공은 일부러 눈가를 비비며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는 삼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팔계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사형, 짐을 내려놓고 행장을 꺼내어 나누자!”
사오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나누다니요? 무엇을 나누자는 겁니까?”
팔계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짐을 당장 나누자.
너는 유사하(流沙河)로 돌아가 다시 요괴 생활을 하거라.
나는 고노장(高老莊)으로 돌아가 아내나 바라보며 지내겠다.
이 흰 말을 팔아 관 하나를 장만해 스승님을 보내드리고,
우리 모두 산산이 흩어져 다시는 서천으로 갈 생각을 말기로 하자!”
삼장은 말을 타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팔계를 꾸짖었다.
“이 멍청한 녀석아! 다 같이 길을 가고 있는데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
팔계는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승님, 제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기를 보세요! 저 손오공이 울면서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을 뚫고 땅을 파며, 도끼로 찍고 불로 태우고, 심지어 기름 솥에서도 끄떡없던 그 대단한 손오공이 말입니다!
그런 그가 울며 오는 걸 보면, 이 산은 험하고 요괴는 어찌나 흉악한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약한 사람들이 어찌 그 요괴를 상대하겠습니까?”
삼장은 그의 말을 듣고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거라. 내가 오공에게 직접 물어보마.”
삼장은 오공을 향해 물었다.
“오공아,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우는 것이냐?
어찌하여 이런 울상으로 나를 겁주려 하느냐?”
손오공은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스승님, 방금 전에 만난 사람은 바로 일직공조(日值功曹)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곳의 요괴들은 신통력이 대단하고 매우 흉포하여,
이 험한 산을 지나가기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가는 길을 여기서 그만두고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삼장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손오공의 옷자락을 붙들고 말했다.
“오공아, 우리 이미 길의 삼분의 이를 넘게 왔고 이제 반환점에 가까워졌는데,
어찌 포기하자는 말을 하느냐?”
손오공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스승님, 제가 마음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적은 많고 우리는 약하니,
‘설령 쇳덩이라 하더라도, 용광로에 들어가 몇 개의 못이나 만들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처럼,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삼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병법에서도 ‘적은 병력으로는 다수의 적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우리는 팔계와 오정이라는 두 명의 동료가 있다.
그들을 네가 적절히 지휘하여 서로 힘을 합쳐 이 산의 요괴를 물리치고 나를 산을 넘어가게 해다오.
그러면 우리 모두 원하던 정과(正果)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오공은 스승 삼장 앞에 다가가 살짝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스승님, 이 산을 넘어가려면 요괴를 반드시 상대해야 합니다.
팔계가 제 말 두 가지를 따라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겁니다.”
팔계가 듣고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형님, 그렇게 힘들다면 그냥 여기서 끝냅시다.
왜 날 끌어들입니까?”
삼장은 팔계를 타이르며 말했다.
“팔계야, 네 형님이 하라는 게 무엇인지 들어보자꾸나.”
팔계는 할 수 없이 물었다.
“형님, 대체 무엇을 하라는 겁니까?”
손오공은 태연하게 말했다.
“첫째는 스승님을 돌보는 일이고, 둘째는 산을 살피는 일이다.”
팔계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스승님 돌보는 건 앉아있는 것이고, 산을 살피러 가는 건 걷는 거 아니오?
설마 앉았다가 걸었다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라는 건 아니겠지요?
어떻게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손오공은 웃으며 말했다.
“둘 다 동시에 하라는 게 아니라, 한 가지만 맡으면 돼.”
팔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스승님 돌보는 일이 어떤 것이며, 산을 살피는 일은 또 어떤 겁니까?
둘 중 하나 골라야 할 테니 먼저 설명해 주시오.”
손오공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스승님을 돌보는 일이란, 스승님이 용변을 보시면 곁에서 시중을 들고,
길을 걸으실 땐 부축하며, 드실 공양이 없으면 직접 구해오는 거지.
그런데 만약 스승님이 배가 고프신 듯하면 네가 맞아야 하고,
얼굴빛이 누렇게 뜨면 네가 맞아야 하며,
몸이 마르신 듯하면 또 네가 맞아야 해.”
팔계는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그건 너무 어렵습니다.
스승님을 부축하거나 돕는 건 괜찮습니다만,
만약 음식을 구하러 나갔다가 사람들이 절 보고 산돼지라고 생각하면 어떡합니까?
그놈들이 저를 잡아 소금에 절여 고기로 만들면 어쩌라고요?”
오공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럼 산을 순찰하러 가거라.”
팔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산 순찰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오공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산에 들어가서 요괴가 몇 마리 있는지, 산과 동굴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거야.
그래야 우리가 대처할 수 있지 않겠느냐?”
팔계는 그제야 안심하며 대답했다.
“그거라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리하여 팔계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들고 산길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씩씩했고, 당당했다.
손오공은 한쪽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를 본 삼장이 꾸짖었다.
“이 말썽꾸러기 원숭이야!
형제들에 대한 애정은커녕 질투심만 가득하구나.
팔계를 산으로 보내 놓고 여기서 비웃고 있으니, 대체 무슨 꿍꿍이냐?”
손오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 제가 웃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팔계가 산으로 간다지만,
요괴를 찾기는커녕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엉터리 핑계를 대고 돌아올 게 분명하거든요.”
삼장은 손오공의 말에 의문을 품으며 물었다.
“네가 어찌 그런 것을 아느냐?”
손오공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팔계 성격을 아는 제 예상입니다.
스승님, 믿기지 않으시면 제가 따라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요괴를 상대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고,
그의 마음에 진정으로 불도를 향한 정성이 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장난이나 치지 말고 그를 도와주거라.”
손오공은 삼장의 허락을 받고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며 몸을 한바탕 휘저었다.
곧 작고 날렵한 벌레로 변신했다.
그 모습을 살펴보면,
얇은 날개는 바람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춤추고,
바늘처럼 가느다란 허리는 눈에 잘 띄지 않으며,
풀숲과 꽃잎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유성처럼 빠르다.
밝게 빛나는 눈망울, 희미하게 들리는 날갯짓 소리.
곤충 중에서도 작고 섬세하여
한낮에 숲에서 쉬더라도 그 누구도 찾아낼 수 없다.
손오공은 날개를 한번 퍼덕이며 팔계를 따라갔다.
팔계의 귀 뒤 털뿌리에 붙어 그의 동태를 살폈다.
팔계는 자신에게 붙은 곤충의 존재를 알 리 없었다.
일곱여덟 리쯤 걸어가던 팔계는 갑자기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내던지고 고개를 돌려 장로 일행을 향해 손짓하며 투덜거렸다.
“저 연약한 늙은 중과 못된 손오공, 멍청한 사형은 다 편안하게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하며 산길을 헤매야 한단 말이냐!
다들 경전을 얻으러 가는 건 똑같은데 왜 나만 산을 정찰해야 한단 말이야?
하, 요괴가 있다면 피해 가야지, 내가 왜 그놈들을 일부러 찾아야 하냐고!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있나!”
차라리 어디 가서 한숨 자고 돌아가 ‘산을 정찰했다’고 둘러대면 될 거야.”
팔계는 잠시 투덜거리다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산비탈에 붉은 풀로 덮인 평평한 언덕을 발견했다.
그는 “잘됐다!”며 풀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구치정파를 내려놓고 땅 위에 자리 잡았다.
풀밭 위에 드러누운 팔계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참 좋구나! 저 손오공도 나처럼 누워보진 못할걸!”
그는 기분 좋은 듯 한숨을 돌리며 코를 골기 시작했다.
손오공은 팔계의 귀 뒤에서 그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팔계가 곤히 잠든 틈을 타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다시 한번 장난을 치기로 했다.
손오공은 몸을 흔들며 재빨리 모습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붉은 부리를 가진 딱따구리로 변신했는데, 그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쇠처럼 단단한 부리는 붉게 빛나고,
초록빛 깃털은 환하게 반짝인다.
강철 같은 발톱은 못처럼 날카롭고,
배고픔도 잊은 채 고요한 숲을 즐긴다.
무너진 썩은 나무를 가장 사랑하며,
메마른 고목은 단번에 외면한다.
둥근 눈과 민첩한 꼬리는 활기가 넘치고,
톡톡 울리는 나무 쪼는 소리가 경쾌하다.
딱따구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집을 지녔다.
저울에 올려보면 고작 두세 냥(兩) 정도 나가는 무게였다.
붉은 구리빛 부리와 검은 철처럼 강인한 발을 가진 이 작은 새는,
재빠르게 날개를 퍼덕이며 팔계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팔계의 얼굴 가까이 다가간 손오공은 붉은 부리를 뻗어 팔계의 입술을 강하게 쪼아댔다.
팔계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요괴다! 요괴가 나타나 나를 찔렀다! 입이 너무 아프구나!”
손으로 입술을 만지며 확인해 보니, 손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팔계는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재수 없는 일도 다 있나! 난 아무 경사도 없는데 어찌 입술에 붉은 물이 묻었단 말인가?”
그는 피 묻은 손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렸지만,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팔계는 피 묻은 손을 보고는 두리번거리며 요괴가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하늘을 선회하며 날아다니는 딱따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팔계는 이를 악물고 분노에 차 소리쳤다.
“이런 망할 녀석! 필마온(弼馬溫)이야 날 괴롭히는 게 일이지만, 네놈까지 날 괴롭히다니!
이제 보니 네놈은 내가 사람인지도 모르고, 내 입을 썩은 나무로 착각한 모양이군.
벌레라도 잡아먹으려고 내 입을 쪼아댔을 테지!”
팔계는 입술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됐다, 입술을 품속에 감추고 다시 잠이나 자야겠다.”
그는 다시 풀밭에 몸을 뉘어 잠을 청했다.
하지만 손오공은 팔계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딱따구리로 변신한 채 다시 그의 귀 뒤를 노려 한 번 더 쪼아댔다.
팔계는 또다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 망할 녀석! 정말 날 괴롭히는 군!
틀림없이 이곳이 네 둥지라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곳인가 보지?
내가 이곳에 머무는 게 못마땅한 거겠지?
안 되겠다. 여기서는 더 못 자겠다!”
팔계는 다시 구치정파(九齒釘耙)를 챙겨 들고 붉은 풀밭을 벗어나 길을 찾으며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오공은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멍청하군!
저렇게 눈을 크게 뜨고도 자기 사람을 못 알아보다니!”
손오공은 다시 몸을 흔들며 작은 벌레로 변신했다.
그는 팔계의 귀 뒤에 딱 달라붙어 어디로 가든 따라다니기로 했다.
팔계는 깊은 산길을 4~5리쯤 더 걸었다.
그러다 산골짜기에서 네모난 탁자 크기의 파란 돌 세 개를 발견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도구를 내려놓고 돌 앞에서 공손히 절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손오공은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저 멍청이, 돌덩이가 사람도 아니고 말도 할 줄 모르는데 절을 한다니, 정말 어이없는 짓을 하는구나.”
팔계는 눈앞의 돌 세 개를 삼장, 사오정, 손오공이라고 상상하며 혼자서 연습을 시작했다.
“좋아, 스승님께 가서 요괴가 있다고 보고하면 되겠지.
그런데 스승님이 무슨 산이냐고 물으시면,
‘흙으로 빚은 산’이나 ‘종이로 만든 산’, ‘밀가루로 찐 산’ 같은 이상한 대답을 했다간 바보 취급만 받을 테고…
그러니 그냥 ‘돌산’이라고 하면 되겠군.
스승님이 무슨 동굴이냐고 물으시면 ‘돌동굴’이라고 대답하고,
문이 어떤 문이냐고 물으시면 ‘못으로 박은 철문’이라고 하면 되겠지.
만약 안이 얼마나 깊냐고 물으시면 ‘3층으로 되어 있다’고 하면 될 거야.
그리고 문에 못이 몇 개 박혀 있냐고 물으면?
음… 그때는 ‘너무 바빠서 못 셌습니다’라고 하면 되겠지!”
팔계는 스스로 머릿속에 대답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만족스러운 듯이 말뚝처럼 박혀 있던 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발길을 돌려 원래의 길로 향했다.
오공은 팔계가 혼잣말로 거짓말을 연습하는 모든 말을 귀 뒤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다.
그는 팔계가 돌아오기 전에 두 날개를 펼쳐 먼저 삼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손오공을 본 삼장이 물었다.
“오공아, 너는 왔는데 어찌 팔계는 돌아오지 않았느냐?”
손오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 그녀석은 지금 거짓말을 지어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조금 늦을 겁니다.”
삼장은 의아한 듯 말했다.
“팔계는 두 귀로 눈을 덮은 듯 어리숙한 녀석이 아니더냐.
그런 그가 무슨 거짓말을 지어내겠느냐?
또 네가 무슨 요상한 말을 만들어 그를 모함하려는 거 아니냐?”
손오공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승님,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릴 뿐입니다.
팔계가 풀숲에 숨어 자다가 딱따구리에 쪼여 깨어났고,
돌을 사람인 양 보고 인사를 하며 ‘돌산’, ‘돌동굴’, ‘철문’, ‘3층짜리’ 같은 엉뚱한 얘기를 미리 연습했다니까요.”
오공의 말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팔계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며 걸어왔다.
그는 연습한 말을 잊어버릴까 봐 계속 복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오공이 소리쳤다.
“팔계야, 뭘 중얼거리고 있는 거냐?”
팔계는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벌써 도착했나요?”
팔계는 다가가 삼장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삼장이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제자야, 고생이 많았구나.”
팔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걷는 사람, 산을 오르는 사람, 누가 고생스럽지 않겠습니까?”
삼장이 물었다.
“그럼 요괴는 보았느냐?”
팔계는 태연하게 말했다.
“봤습니다, 봤습니다. 무더기로 요괴들이 있더군요!”
삼장이 놀라며 물었다.
“그 요괴들이 너를 어찌했느냐?”
팔계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저를 돼지 할아버지라 부르며, 곱게 대접하더군요.
고운 국수를 한 상 차려주고, 산을 지나가도록 깃발과 북을 준비해 환송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오공이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마 풀숲에서 자다가 꿈꾼 것을 말하는 모양이군요.”
팔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잤다는 걸 어찌 알았지?’
손오공은 팔계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이리 와라! 내가 몇 가지 물어보겠다.”
팔계는 깜짝 놀라 몸을 떨며 말했다.
“물어보시려면 물어보세요. 그런데 왜 멱살을 잡으십니까?”
손오공이 물었다.
“어떤 산이더냐?”
“돌산입니다.”
“어떤 동굴이더냐?”
“돌동굴입니다.”
“문은 어떤 모양이더냐?”
“못으로 박은 철문이었습니다.”
“안은 얼마나 깊었더냐?”
“3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손오공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
“그만하거라. 나머지는 내가 다 알고 있다.
스승님께 네가 하려던 말을 내가 대신 말씀드리마.”
팔계가 버럭 소리쳤다.
“형님! 형님은 거기 가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아십니까?”
오공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문에 박힌 못 개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지? 맞지?”
팔계는 놀라며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손오공은 다시 물었다.
“돌에게 절하며 마치 우리 셋을 상상이라도 한 듯, 질문하고 대답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거짓말을 잘 꾸며서 필마온(弼馬溫=손오공)을 속이겠다’고 말한 적 없더냐?”
팔계는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말했다.
“형님, 제가 산을 돌아다닐 때 따라오신 겁니까?”
손오공은 팔계를 꾸짖었다.
“이 멍청한 녀석아!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산을 순찰하라고 했더니 가서 잠만 잤다니!
만약 딱따구리가 널 깨우지 않았더라면, 넌 아직도 자고 있었을 게다.
겨우 깨어나더니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지어내다니, 어찌 대사를 그르칠 생각을 했단 말이냐!
어서 다리를 내밀어라.
다섯 대를 쳐서 정신 차리게 해 주마!”
팔계는 얼굴이 새파래지며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형님, 그 몽둥이는 치면 살갗이 벗겨지고, 더 깊이 맞으면 근육까지 상하지 않습니까?
다섯 대를 맞으면 저는 죽어요!”
손오공이 단호하게 말했다.
“맞기 싫으면 왜 거짓말을 했느냐?”
팔계는 울먹이며 빌었다.
“형님, 딱 이번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오공은 팔계를 노려보며 말했다.
“딱 한 번 바줘서 세 대만 맞도록 하자.”
팔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부짖었다.
“형님! 저는 반 대도 견디기 힘듭니다!”
팔계는 어떻게든 맞지 않으려고 삼장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스승님,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삼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팔계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틀림없이 팔계가 잘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산을 넘는 데 사람이 부족한데, 팔계를 때려서 어찌 쓰겠느냐.
산을 넘고 나서 벌을 주면 안 되겠느냐?”
손오공은 삼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옛말에 ‘부모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큰 효도다’라고 했습니다.
스승님이 말리시니 이번에는 참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산을 순찰하러 갔다가 또 거짓말로 일을 그르치면, 그땐 절대 봐주지 않을 겁니다!”
팔계는 간신히 숨을 고르며 일어나 다시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걷는 내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형님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건 아닐까?’
팔계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을 살폈고 모든 것이 손오공으로 보였다.
산길을 칠 팔리쯤 걸었을 때, 갑자기 산비탈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그러나 팔계는 놀라지도 않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형님! 이번에는 거짓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그냥 가만히 좀 계세요!”
다시 몇 걸음을 걸었을 때, 거센 산바람이 불더니 마른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팔계는 땅을 치며 말했다.
“형님, 또 무슨 수작을 부리시는 겁니까? 나무로 변신해 날 괴롭히려는 거라면 그만하세요!”
다시 길을 걷던 그는 하늘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팔계는 까마귀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부끄러운 줄 아세요! 까마귀로 변신해서 저를 감시하는 겁니까?
거짓말 안 한다니까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그러나 이번에는 손오공이 따라오지도 않았고,
그저 팔계 혼자서 겁을 먹으며 쓸데없는 의심과 상상을 한 것이었다.
팔계의 의심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는 혼자 두려움 속에서 길을 걸었다.
평정산(平頂山)의 연화동(蓮花洞)에는 금각대왕(金角大王)과 은각대왕(銀角大王)이라는 두 요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금각대왕이 동굴 안에 앉아 은각대왕에게 물었다.
“형제여, 우리가 산을 순찰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은각대왕이 대답했다.
“반 달 정도 되었지요.”
금각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은 산을 한 번 순찰해 보자꾸나.”
은각대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순찰은 왜 하자는 겁니까?”
금각대왕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최근 들리는 말에 따르면,
동토(東土) 당나라에서 한 승려가 서천(西天)으로 경전을 얻으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와 함께 가는 자들이 손행자(孫行者), 팔계(八戒), 사승(沙僧), 그리고 백마까지 해서 모두 다섯이라 하더군.
어디쯤 오는지 확인해 그들을 붙잡자구나.”
은각대왕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우리가 사람을 먹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잡아오면 되지, 굳이 그들을 노릴 필요가 있습니까?
그들이 어디를 가든 내버려 두지요.”
그러나 금각대왕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그 진가를 모르는구나.
내가 하계에 내려오던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승은 금선장로(金蟬長老)가 환생한 몸으로, 열 번의 윤회를 거친 끝에 수련을 완성한 인물이라더군.
그의 몸에서는 원양(元陽)이 전혀 새지 않았기에, 그의 살을 먹으면 장수하고 불로불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은각대왕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살을 먹으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는 거군요!
우리가 굳이 수행하며 공을 쌓고, 용과 호랑이를 연마하며, 음양을 조화시키는 수련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당승을 잡아먹으면 끝 아닙니까?
제가 당장 그를 잡아오겠습니다.”
금각대왕은 손을 들어 동생을 말렸다.
“너는 너무 성급하다.
문 밖을 나가 닥치는 대로 스님을 잡아오다가는 당승이 아닌 사람도 잡아올 게다.
그렇게 되면 요괴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내가 미리 그의 모습과 일행의 외형을 그림으로 그려 두었다.
이 그림을 가지고 가서 스님을 만나면 그림과 대조해 보거라.”
금각대왕은 그림을 내주며 당승과 제자들의 이름과 생김새를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은각대왕은 그림과 설명을 받아들고, 삼십명의 작은 요괴들을 이끌고 산으로 나섰다.
팔계는 운이 없었다.
걷고 있는 길 앞에 요괴 무리와 딱 마주친 것이다.
요괴들은 그를 가로막고 물었다.
“누구냐? 어디서 온 놈이냐?”
팔계는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경을 가지러 가는 스님이라고 말했다가는 바로 잡혀가겠구나.’
그래서 그는 어물쩍 대답했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작은 요괴가 은각대왕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대왕이시여, 지나가는 사람이라 합니다.”
요괴들 사이에는 그림 속 인물을 알아본 자들이 있었다.
몇몇이 속삭이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자는 그림 속 돼지 같이 생긴 승려 팔계와 비슷합니다.”
요괴들은 즉시 그림을 가져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팔계는 이를 보고 기겁하며 중얼거렸다.
“이런! 그림을 그려 우리를 잡으려 했단 말인가!”
작은 요괴들은 그림 속 모습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했다.
“이 하얀 말을 탄 자가 당승이고, 털투성이 얼굴은 손오공입니다.”
팔계는 이 말을 듣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망했군! 성황님, 제발 제가 없었다고 해 주세요.
돼지고기를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고기 세 근에 제사 비용까지 스물네번 드리겠습니다!’
요괴는 이어 말했다.
“이 검고 키 큰 자는 사오정이고, 이 긴 주둥이와 큰 귀를 가진 돼지 같은 자가 저팔계입니다!”
팔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자신의 주둥이를 품속에 숨기며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병이 있습니다. 입을 뺄 수가 없어요.”
요괴는 작은 요괴들에게 명령했다.
“갈고리를 가져와 그의 입을 끌어내라.”
팔계는 두려움에 떨며 마지못해 주둥이를 내밀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보잘것없는 모습입니다.
보시려면 보십시오. 갈고리를 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요괴는 팔계를 알아보자마자 칼을 뽑아 들고 덤벼들었다.
팔계는 황급히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들어 칼을 막으며 소리쳤다.
“얘야, 예의를 좀 차려라! 내 갈퀴 맛을 보아라!”
요괴는 비웃으며 말했다.
“이 중은 농사일 하다 말고 출가한 모양이군.”
팔계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녀석, 제법 똑똑하구나!
그런데 내가 농사일 하다 출가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요괴는 여유로운 태도로 대답했다.
“네가 갈퀴를 다룰 줄 아는 걸 보니, 분명 남의 밭에서 일하다가 갈퀴를 훔쳐온 게 틀림없다.”
팔계는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네가 이 갈퀴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내가 쓰는 이 갈퀴는 너 같은 녀석들이 아는 평범한 농기구가 아니다.
들어 보아라!”
“굵은 이빨은 마치 용의 발톱 같고, 금으로 장식된 모습은 호랑이와도 같지.
적과 마주하면 찬바람이 불고, 맞붙으면 불꽃이 일어나지.
이 갈퀴로 스승님의 장애물을 없애고, 서천 길의 요괴들을 처치한다네.
한 번 휘두르면 연기와 안개가 태양과 달을 가리고,
움직일 때면 구름이 몰려들어 별자리가 보이지 않지.
태산을 무너뜨리면 호랑이도 무서워하고,
대양을 뒤엎으면 늙은 용도 놀란다네.
네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내가 갈퀴를 한 번만 내려치면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이 날 것이다!”
요괴는 팔계의 말을 듣고도 물러서지 않고 칠성검을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팔계와 요괴는 산 속에서 스무 번 넘게 주거니 받거니 치열하게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팔계는 이를 악물고 목숨을 걸고 맞섰다.
요괴는 팔계가 큰 귀를 흔들며 침을 뱉고 구치정파를 휘두르며 고함치는 모습에 잠시 기가 꺾였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작은 요괴들에게 외쳤다.
“모두 덤벼라!”
요괴가 혼자 싸웠다면 그럭저럭 대적할 수 있었겠지만,
무리지어 달려들자 팔계는 당황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도망치기 시작한 팔계는 길이 울퉁불퉁한 것을 보지 못하고 덩굴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
겨우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했으나 작은 요괴 하나가 바닥에 누워 있다가 팔계의 발목을 붙잡아 그를 넘어뜨렸고
팔계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크게 넘어졌다.
그 틈을 타 요괴 무리가 달려들어 팔계의 갈기를 잡고, 귀를 쥐어뜯고, 발을 잡아당기고, 꼬리를 끌며 붙잡았다.
그렇게 팔계는 요괴 무리의 손에 들려 동굴로 끌려갔다.
아, 참으로 이런 상황이다.
“몸에 깃든 재앙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수많은 고난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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