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西遊記 Journey to the West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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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장
삼장 일행이 강을 따라 위기를 벗어나고,
팔계는 은혜를 받아 산림으로 돌아가다.
시에서 이르기를
망상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마라.
진리를 어찌 억지로 구할 수 있겠는가?
본래의 자성을 부처 앞에서 닦는다면,
미혹과 깨달음은 순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깨달음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고,
미혹은 수많은 세월을 떠돌게 만든다.
오직 진리에 맞는 한 생각을 유지한다면,
무수한 죄악도 모두 사라지리라.
팔계와 오정은 요괴와 서른 번 넘게 맞붙었지만,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요괴의 수법을 따지자면, 중 두 명은커녕 스무 명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삼장 법사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뒤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육정육갑(六丁六甲), 오방게제(五方揭諦), 사직공조(四值功曹),
열여덟 명의 호법 가람 신들이 나타나 팔계와 오정을 도와주고 있었다.
(각주:
육정육갑(六丁六甲)
육정과 육갑은 도교와 불교에서 등장하는 신적인 존재들로, 하늘과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여섯 명의 정(丁)과 여섯 명의 갑(甲)을 가리킵니다.
육정(六丁): 도교에서는 음양과 천문을 상징하며, 주로 태어나는 순간의 천간에 따라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집니다.
육갑(六甲): 하늘을 지키는 여섯 명의 신으로, 특히 병사들의 보호와 전투를 돕는 역할을 맡습니다.
서유기에서는 이들이 삼장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하며, 인간의 운명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오방게제(五方揭諦)
오방은 동, 서, 남, 북, 중앙 다섯 방위를 상징하며, 게제는 각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들을 뜻합니다.
도교와 불교에서 이 다섯 신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몰아내며 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담당합니다.
서유기에서 오방게제는 특정 상황에서 등장해 삼장을 호위하고, 요괴를 물리치는 역할을 맡습니다.
사직공조(四值功曹)
불교와 도교에서 사직공조는 사계절을 주관하는 네 명의 신을 뜻합니다.
이들은 각각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상징하며,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조율하는 신으로 여겨집니다.
서유기에서는 이들이 삼장을 돕기 위해 나타나, 요괴와의 싸움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열여덟 명의 호법 가람(護法伽藍)
호법 가람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18명의 신들입니다.
원래 가람(伽藍)은 불교 사찰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사찰과 불법을 보호하는 신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18명의 호법 가람 신들은 악귀나 요괴들로부터 불법을 지키며, 수행자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삼장은 동굴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고 있었다.
그는 싸우고 있는 두 제자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오능아, 너는 어느 마을에서 착한 이웃을 만나 공양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
오정아, 너는 또 어디에서 오능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이렇게 요괴에게 붙잡혀 고생하고 있는데, 너희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
이 고난을 벗어나 하루빨리 영산으로 가고 싶구나.”
삼장이 한탄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 동굴 안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삼장이 묶인 기둥을 붙잡고 물었다.
“스님, 어디서 오셨길래 이곳에서 이렇게 묶여 계십니까?”
삼장은 눈물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보시오, 여인.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이미 죽을 운명입니다.
당신 집에 들어온 이상, 잡아먹으려면 어서 먹으시오.
그리고 더는 묻지 마시오.”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저는 사람을 먹는 자가 아니에요.
제 집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삼백 리 떨어진 보상국(寶象國)이라는 나라에 있습니다.
저는 그 나라 왕의 셋째 공주, 이름은 백화수(百花羞)라고 합니다.
열세 해 전, 8월 보름 밤에 달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요괴가 광풍을 일으켜 저를 납치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이곳에서 그와 함께 살며 아이를 낳고, 부모님과는 소식조차 주고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지만 다시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스님은 어디서 오셨기에 이 요괴에게 잡히셨습니까?”
삼장이 답했다.
“저는 당국(唐國)에서 서천으로 경문을 구하러 가는 중입니다.
이곳을 지나던 중, 실수로 이곳에 들어섰다가 요괴에게 붙잡혔습니다.
요괴가 나뿐만 아니라 내 두 제자까지 잡아 한꺼번에 삶아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백화수 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스님께서 경문을 구하러 가신다는 것을 알았으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 스님께서 가시는 길에 제 고향인 보상국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제 부모님께 이 편지를 전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이 요괴에게 당신을 풀어달라고 하겠습니다.”
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인이시여, 만약 나를 살려주신다면 반드시 당신의 편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백화수 공주는 즉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편지를 써서 봉투에 봉한 뒤 삼장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삼장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준 뒤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
“스님, 이것은 제 고향으로 보낼 편지입니다.
부디 꼭 제 부모님께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삼장은 자유의 몸이 된 것에 감사하며 말했다.
“여인이시여,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 편지를 꼭 국왕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세월이 오래 지나 당신의 부모님께서 저를 믿지 않으시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부디 저를 책망하지 말아주십시오.”
백화수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딸이 셋뿐이십니다.
제가 보낸 편지를 보시면 반드시 확인하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삼장은 편지를 단단히 품에 넣고 공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뒤 동굴을 나서려 했다.
그러자 공주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스님, 앞문으로는 나가시면 안 됩니다.
지금 앞문에는 크고 작은 요괴들이 북을 치며 대왕과 함께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이 스님을 잡는다면 그래도 심문이라도 하겠지만, 작은 요괴들에게 붙잡히면
생사도 분간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대왕을 설득해 스님을 풀어드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 후 제자들과 만나 함께 이곳을 떠나십시오.”
삼장은 공주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 뒤 그녀의 지시에 따라 뒤문으로 나가,
가시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기다렸다.
한편, 백화수 공주는 꾀를 하나 떠올리고는 급히 앞으로 나아가 요괴 무리들을 헤치며 문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팔계와 오정이 요괴와 함께 공중에서 싸우는 소리였다.
공주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황포랑(黃袍郎)!”
요괴 왕은 공주의 외침을 듣고, 팔계와 오정을 놔둔 채 구름에서 내려왔다.
그는 강철 칼을 쥔 채 공주의 손을 잡고 말했다.
“부인, 무슨 일이오?”
공주는 말했다.
“방금 전에 제가 비단 장막 안에서 잠을 자던 중 꿈속에서 갑옷을 입은 신인을 보았습니다.”
요괴는 놀라며 물었다.
“그 갑옷 입은 신인이 누구란 말이오? 왜 나타났소?”
공주는 대답했다.
“그 신인은 내가 어릴 적 궁궐에서 몰래 빌었던 소원을 상기시켜 주었어요.
그때 나는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면 높은 산에 올라 신선의 경지에 이르고,
스님을 공양하고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소원했었죠.
하지만 당신과 혼인을 하고 나서는 부부간의 즐거움 속에 그 약속을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신인이 내 꿈으로 찾아와 그 약속을 이행하라고 다그치며 나를 깨웠어요.
그리고 나서 잠에서 깨어 보니, 장대에 한 스님이 묶여 있더군요.
부디 제 마음을 봐서라도 그 스님을 풀어주세요.
이 스님께 공양하며 소원을 갚는 셈치고 그를 살려주세요.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요괴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부인, 걱정이 너무 많구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내가 사람을 먹고 싶다면 잡아먹을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소?
저 스님 한 명 정도야 풀어줄 수 있소.”
공주는 다시 간청했다.
“그러면 뒷문으로 스님을 내보내 주세요.”
요괴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소, 뒷문으로든 앞문으로든 나가게 두겠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시오.”
그는 강철 칼을 휘두르며 크게 외쳤다.
“돼지 팔계야, 이리 오너라!
내가 너와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아내의 간청을 들어 네 스승을 살려주겠다.
어서 뒷문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서천으로 떠나라.
다만 다시는 내 영역에 들어오지 말아라.
그때는 절대 용서치 않을 테니!”
팔계와 사오정은 그 말을 듣자 마치 지옥문에서 풀려난 듯 급히 말을 끌고 짐을 챙겼다.
그들은 황급히 파월동(波月洞)의 뒷문으로 돌아가 스승을 찾으며 외쳤다.
“스승님!”
삼장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가시덤불 속에서 답했다.
“여기 있다!”
오정은 풀숲을 헤치며 삼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스승을 부축하여 황급히 말을 태웠다.
이 장면을 한 구절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잔혹한 요괴에게 죽을 뻔했지만, 백화수의 은혜로 구해졌다.
물고기가 낚시바늘에서 벗어나 파도를 헤치며 자유를 찾은 듯하다.”
팔계는 앞장서 길을 이끌었고, 오정은 뒤따르며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섰다.
둘은 끊임없이 투덜대고 서로를 탓하기 바빴지만,
삼장은 중간에서 계속 다독이며 화해를 시켰다.
날이 저물면 숙소를 찾아 쉬고, 닭이 울면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떠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길을 따라 긴 여정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299리를 지나치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웅장한 도시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은 바로 보상국(寶象國)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구름은 아득히 퍼지고, 길은 멀리 이어졌으며,
천 리를 달려온 땅에도 풍경은 한결같이 풍요로웠다.
길가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멀리 솟아 있는 산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졸졸 흐르는 물줄기는 옥빛 보석처럼 반짝였다.
밭에는 논과 밭이 이어져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풍성하게 자란 들판의 새싹들은 먹거리가 넘쳐났다.
계곡과 골짜기마다 고기를 낚는 어부들과 산초를 채취하는 나무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도시의 성벽은 철옹성처럼 견고했고,
집집마다 평화로운 일상이 깃들어 있었다.
아홉 층의 누각은 궁전처럼 웅장했고,
만 길 높이의 누대는 화려한 깃발을 휘날렸다.
그곳에는 태극전(太極殿), 화개전(華蓋殿), 소향전(燒香殿), 관문전(觀文殿), 선정전(宣政殿), 연영전(延英殿) 같은 궁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계단과 누각마다 문관과 무관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궁궐 안에는 대명궁(大明宮), 소양궁(昭陽宮), 장락궁(長樂宮), 화청궁(華清宮), 건장궁(建章宮), 미앙궁(未央宮) 같은 아름다운 궁전들이 자리했으며,
각각의 궁전에서 울리는 종과 북, 관악기 소리는 봄날의 애잔한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궁궐 정원에서는 이슬을 머금은 꽃이 아름다움을 자랑했고,
궁궐 연못가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한껏 우아함을 뽐냈다.
큰길에는 화려한 관복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위엄 있게 지나갔고,
한적한 곳에서는 활과 화살을 들고 구름을 뚫으며 독수리를 사냥하는 모습이 보였다.
꽃길과 버드나무 길,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누각들은
봄바람에 한층 더 생기를 띠며 마치 낙양교(洛陽橋)처럼 아름다웠다.
그곳에 도착한 삼장은 고국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고,
팔계와 사오정은 작은 여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쉴 수 있었다.
보상국의 아름다운 풍경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스승과 제자들은 짐을 정리하고 말과 함께 여관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삼장 일행은 궁궐 앞의 조문(朝門)에 이르러, 관문을 지키는 대사(大使)에게 말했다.
“저는 당나라의 승려로, 대왕을 알현하고 문첩을 교환하고자 왔습니다.
전하께 이 사실을 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황문(黃門)의 주사관(奏事官)은 즉시 백옥으로 된 계단 앞까지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폐하!, 당나라에서 온 한 고승이 폐하를 뵙고 문첩을 교환하기를 원합니다.”
보상국의 국왕은 당나라가 대국(大國)임을 듣고,
또한 그가 고승임을 알게 되자 크게 기뻐하며 곧 알현을 허락했다.
“들어오라 하라.”
국왕은 삼장을 금계(金階)로 불러들였고, 그는 예를 갖추며 공손히 절을 올렸다.
이를 본 양쪽의 문무백관들도 모두 감탄하며 말했다.
“대국에서 온 인물은 예법이 이렇게도 훌륭하구나.”
국왕이 물었다.
“장로여, 그대는 우리 나라에 무엇 하러 왔는가?”
삼장이 대답했다.
“소승은 당나라의 승려로, 황제의 칙명을 받고 서방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는 중입니다.
원래 문첩을 가지고 있었으나, 폐하의 나라에 도착하여 이를 교환해야 할 사정이 있어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국왕은 말했다.
“당나라 황제의 문첩이 있다면 가져오라. 보도록 하겠다.”
삼장은 두 손으로 문첩을 받들어 국왕에게 올렸다.
국왕은 문첩을 펼쳐 어좌(御案)에 놓고 읽었다.
문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섬부주(南贍部洲) 대당국(大唐國)의 천명을 이어받은 당나라 황제가 이 문첩을 보낸다.
짧은 덕으로 크나큰 기반을 잇고, 신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며, 매일 밤낮으로 마음을 조심스레 가다듬고 있다.
앞서 내가 경하노룡(涇河老龍)을 구하지 못해 천제(天帝)의 책망을 받아 목숨을 잃고 명부로 내려간 일이 있었다.
하지만 명부의 군왕께서 그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음을 감찰하시고,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셨다.
이에 보은의 뜻으로, 광대한 선행을 베풀고 고혼(孤魂)을 초탈시키고자 도량을 세우려 한다.
구제의 관세음보살께서 금신(金身)으로 나타나셔서 서방에 불경이 있으니, 이를 구하면 고혼을 구제할 수 있다고 알려 주셨다.
이에 법사 현장(玄奘)을 보내어 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경전을 구하게 하니, 서방 여러 나라에서 이 문첩을 본다면 그를 도와주기 바란다.
대당 정관(貞觀) 13년 가을의 길일(吉日)에 당황제가 친히 문첩을 내린다.”
(상단에는 아홉 개의 황제 보인이 찍혀 있음)
국왕은 문첩을 읽은 뒤 자신의 국새를 꺼내 찍고, 문서를 확인한 후 삼장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문첩을 확인하였소. 당신의 여정을 진심으로 돕겠소.”
삼장은 국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문첩을 거둔 뒤 다시 아뢰었다.
“소승이 이곳에 온 것은 첫째로 문첩을 교환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로 폐하께 전해야 할 서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왕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그 서신이란 무엇이오?”
삼장은 대답했다.
“폐하의 세 번째 공주께서 완자산(碗子山) 파월동(波月洞)에 사는 황포요괴(黃袍妖)에게 납치되었는데,
소승이 우연히 공주를 만나게 되어 서신을 전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국왕은 이 말을 듣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말했다.
“13년 전부터 공주를 보지 못했소.
그간 조정의 문무관들이 얼마나 많이 좌천되었는지,
궁궐 안팎에서 크고 작은 궁녀와 내시가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는지 모르오.
모두들 공주가 궁에서 나가 길을 잃은 줄로만 알았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소.
성 안의 백성들조차 무수히 심문을 받았으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는데,
요괴에게 납치된 것이었구려.
오늘에서야 소식을 듣게 되니, 슬픔에 눈물이 멈추질 않소.”
삼장은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어 국왕께 바쳤다.
국왕은 서신을 받아 들고,
봉투에 적힌 “평안(平安)” 두 글자를 보자 손에 힘이 풀려 책봉을 뜯지 못했다.
곧 명을 내려 한림원 대학사를 불러 서신을 읽게 했다.
대학사는 즉시 어전에 나와 서신을 뜯었다.
전에는 문무백관들이, 후에는 후궁과 궁녀들까지 모두 귀를 기울였다.
대학사가 낭랑하게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불효녀 백화수(百花羞)가 대덕하신 부왕 만세께 정중히 머리 조아려 백 번 절합니다.
아울러 삼궁의 모후께 소양궁(昭陽宮) 아래에서 문안드리며, 조정의 모든 문무 대신들께도 인사드립니다.
미천한 딸이 후궁에서 생명을 받아 부왕과 모후의 은혜를 입고 자랐으나,
그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지극한 효성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바로 13년 전, 8월 15일 달 밝은 중추의 명절에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그날 부왕의 은혜로 각 궁에 연회를 베풀어 주시고, 달을 즐기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차례의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금빛 눈과 푸른 얼굴에 푸른 머리칼을 가진 요괴가 나타나 저를 납치했습니다.
그는 구름을 타고 저를 한적한 산속으로 데려가, 저를 강제로 그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 이후로 무려 13년 동안 모진 세월을 견디며 두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이들은 모두 요괴의 자식일 뿐입니다.
이는 인간의 윤리를 망치고, 사회의 풍속을 해치는 일로, 서신을 전하기에도 부끄러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제가 죽고 나면 모든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이렇게 슬픔을 품고 서신을 씁니다.
마침 당나라의 고승이 이 요괴에게 붙잡혀 저와 같은 고난을 겪고 있기에,
눈물로 이 서신을 쓰고 감히 이 편지를 부왕께 올립니다.
바라옵건대 부왕께서는 저의 비참한 상황을 헤아려,
장수를 보내어 완자산 파월동의 황포요괴를 물리쳐 주시고,
저를 구해 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급히 쓰느라 공손함을 다하지 못했으니 용서하시고,
부왕과 모후께 직접 머리 조아리며 인사드릴 날을 고대합니다.
불효녀 백화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아룁니다.
대학사가 서신을 다 읽자, 국왕은 통곡했고, 삼궁의 모후들은 눈물을 흘렸다.
문무백관과 후궁들, 안팎의 모든 사람이 깊이 슬퍼하며 탄식했다.
국왕은 한참 동안 통곡한 뒤, 좌우의 문무백관들에게 물었다.
“이중에 누가 군사를 일으켜 요괴를 잡고 내 딸 백화공주를 구해올 수 있겠소?”
여러 차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무장 같았고, 진흙으로 빚어 만든 문관 같았다.
국왕은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 눈물을 샘물처럼 흘렸다.
그때 백관들이 모두 머리를 숙이며 아뢰었다.
“폐하,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소서.
공주께서 사라지신 지 이미 13년이 지났으나,
당나라의 성스러운 스님을 우연히 만나 서신을 받게 된 것이니 확실한 진위는 아직 모릅니다.
더욱이 저희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며
보잘것없는 재주로 그저 병서를 익히고 무략을 배워,
진을 꾸리고 국경을 지키는 일만 해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요괴는 구름을 타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존재니,
저희가 어떻게 그에게 대적하여 공주님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동방에서 온 이 고승은 성스러운 스님이니,
분명 요괴를 제압할 방책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시비를 전하러 오는 사람이 바로 시비를 해결할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스님께 요괴를 물리치고 공주를 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는 것이 가장 완벽한 방책일 것입니다.”
국왕은 이 말을 듣고 재빨리 삼장을 불러 말했다.
“장로께서 요괴를 제압할 방도를 가지고 계신다면,
신통력을 발휘하여 요괴를 잡고 내 딸을 구해 주시오.
그러면 굳이 서방으로 가 부처님을 뵐 필요도 없을 것이며,
스님 생활을 내려놓고 나와 형제가 되어 용상에 함께 앉아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도록 하겠소.
어떻겠소?”
삼장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소승은 그저 불경을 암송할 줄 알 뿐, 요괴를 물리칠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국왕이 다시 물었다.
“요괴도 물리치지 못하면서, 무슨 용기로 서역으로 가 부처님을 뵈러 간단 말이오?”
삼장은 더 이상 국왕을 속일 수 없어, 자신의 두 제자에 대해 털어놓았다.
“폐하, 소승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소승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는데,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며, 소승을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습니다.”
국왕은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이런, 스님.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구려.
그런 제자가 있다면 왜 함께 조정에 들어오지 않았소?
조정에 함께 들어왔다면, 비록 대단한 상은 내리지 못할지라도, 공양 정도는 내릴 것이 아니오.”
삼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소승의 제자들은 용모가 흉악하여 감히 조정에 데리고 들어와 폐하의 용안을 놀라게 할까 염려되었습니다.”
국왕은 웃으며 말했다.
“스님도 참 이상하구려. 내가 그들을 두려워할 리가 있겠소?”
삼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소승의 첫 번째 제자는 돼지 성을 가진 오능팔계입니다.
그는 긴 주둥이와 송곳니, 거친 털과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으며, 몸은 비대하고, 걷는 모습은 바람처럼 휘몰아칩니다.
두 번째 제자는 성은 사이고 법명은 오정이라 합니다.
그는 키가 무려 12척에 팔은 3척이나 되며, 얼굴은 푸른빛이 돌고 입은 핏빛이 감돌며, 눈빛은 번쩍이고 치아는 못처럼 날카롭습니다.
그들이 모두 이런 모습이기에 소승은 감히 폐하를 놀라게 할까 두려워, 조정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국왕이 말했다.
“이미 이렇게 말했으니, 내가 그들을 왜 두려워하겠소?
당장 그들을 불러들이시오.”
곧 금패를 내려 관역으로 보내어 그들을 초청하도록 명을 내렸다.
팔계는 초청 소식을 듣고 오정에게 말했다.
“오정아, 이제야 스승님이 서신을 보낸 보람을 알겠구나.
스승님이 서신을 전하자 국왕께서 ‘서신을 전한 이를 소홀히 대할 수 없다’며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셨을 거야.
그런데 스승님은 식성이 워낙 소박하시니, 우리처럼 푸짐하게 드실 것 같지는 않아.
그래도 우리의 이름을 밝히니 이렇게 금패를 보내 초청해 주셨으니, 잔뜩 먹고 내일 힘내서 길을 나서면 되겠구나.”
오정이 말했다.
“형님, 그런 말은 그만하시고 일단 가봅시다.”
그들은 짐과 말을 관역 관리에게 맡기고 각자 무기를 챙긴 뒤 금패를 따라 궁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옥 계단 앞에 도착하자, 좌우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 뒤,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본 문무백관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수군거렸다.
“저 두 스님은 생김새도 괴이한데다 예의까지 없구나.
국왕을 뵈며 인사를 올렸으면 당연히 몸을 낮추고 엎드려야 할 텐데, 꼿꼿이 서서 저러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야.”
팔계는 이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생김새가 좀 특이할 뿐이에요.
처음엔 무섭고 보기 싫어 보일 수 있지만, 좀 더 보고 있으면 은근히 괜찮고 정이 드는 얼굴입니다.”
국왕은 두 스님의 흉한 외모를 보고 이미 겁에 질렸는데,
거기에 저팔계의 엉뚱한 말을 듣자 더더욱 무서워 몸을 떨며 용상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곁에 있던 신하들이 황급히 부축해 일으켰다.
이 광경을 본 삼장은 황급히 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소승이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제자들의 추한 모습 때문에 감히 조정에 들이지 않으려 했건만,
그래도 폐하의 용안을 놀라게 했으니 소승의 잘못이옵니다!”
국왕은 여전히 놀란 기색으로 떨며 삼장을 일으키며 말했다.
“장로여, 그나마 미리 말을 했으니 다행이지,
그 말을 듣지 못하고 갑자기 저들을 보았다면 나는 분명 놀라 죽었을 것이오.”
국왕은 한참을 안정한 뒤,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돼지 스님, 그리고 저기 파란 얼굴의 스님, 그 중에서 누구의 요괴 퇴치 실력이 뛰어난가?”
저팔계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성급히 말했다.
“폐하, 제가 제일 잘합니다!”
국왕이 물었다.
“어떻게 잘한다는 것이오?”
팔계는 당당히 말했다.
“저는 원래 하늘의 천붕원수였는데, 하늘의 법을 어겨 인간 세상으로 떨어졌지요.
하지만 지금은 불문에 귀의하여 수행 중입니다.
동토를 떠난 뒤로 제일 먼저 요괴를 물리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국왕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그대가 천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왔다니, 변신술도 뛰어날 것 같소.
무엇이든 변신해 보시오.”
팔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폐하께서 원하는 것을 말씀만 하시면 그에 맞게 변신해 보겠습니다.”
국왕이 명했다.
“그럼, 큰 것으로 변해 보시오.”
팔계는 삼십육 가지의 변신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계단 앞에서 그 재주를 뽐내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며 결을 맺고 한마디 소리를 외쳤다.
“길어져라!”
그는 몸을 한 번 굽히더니 폈고 순식간에 몸길이가 여덟, 아홉 장(丈)에 이르렀다.
마치 길을 여는 거대한 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를 본 문무백관들은 공포에 휩싸여 전전긍긍하며 몸을 떨었고,
온 나라의 군신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때 전각의 진전을 맡은 장군이 물었다.
“스님, 이렇게 키가 계속 큰다면 어디까지 커질 수 있겠소?
끝이 있기는 한 것이오?”
팔계는 또다시 엉뚱한 말을 늘어놓으며 대답했다.
“그건 바람에 달렸지요. 동풍이나 서풍이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남풍이 불면, 몸이 너무 커져서 푸른 하늘에 큰 구멍을 내고 말 것입니다.”
국왕은 크게 놀라며 외쳤다.
“그만하시오! 당신의 변신술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겠소!”
팔계는 몸을 작게 줄이며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는 계단 앞에 서서 얌전히 국왕을 기다렸다.
국왕이 다시 물었다.
“스님, 요괴와 싸우려면 어떤 무기를 쓰시오?”
팔계는 허리에 찬 구치정파(九齒釘耙)를 꺼내 보이며 대답했다.
“폐하, 제가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 갈퀴입니다.”
국왕은 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마치 집 앞을 손질하거나 청소하는 데 쓰는 도구 같군요.
여기에는 채찍, 망치, 쇠구슬, 곤봉, 칼, 창, 도끼 같은 제대로 된 무기들이 많소.
원하는 걸 하나 골라서 쓰시오.
그 갈퀴 같은 것을 무기라고 부를 수 있겠소?”
저팔계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모르시는군요.
이 갈퀴가 보기에는 좀 투박해 보일지 모르나, 이는 제가 어릴 적부터 늘 지니고 다니던 무기입니다.
과거 천하수부(水府)에서 원수로 지내며,
팔만의 수군을 통솔하던 시절에도 이 갈퀴에 크게 의지했지요.
지금 인간 세상에 내려와 스승님을 보호하며, 산에서는 호랑이와 늑대 굴을 부수고,
물에서는 용과 큰 물고기의 둥지를 뒤집는 데에도 모두 이 갈퀴를 사용합니다.”
국왕은 팔계의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그의 능력을 믿게 되었다.
그는 곧 아홉 비빈들에게 명령했다.
“짐이 직접 마시는 어주(御酒)를 가져오라.
장로님께 작별의 예로 올리겠다.”
비빈들은 어주를 준비하여 가득 따른 잔을 팔계에게 건넸다.
국왕이 말했다.
“장로님, 이 한 잔의 술은 작별의 예를 표하기 위함이오.
요괴를 잡아 공주를 구해 오신다면 성대한 연회로 보답하고, 천금을 내려 감사를 표할 것이오.”
팔계는 잔을 받았다.
비록 외모와 행동은 거칠어 보였지만, 의외로 점잖은 태도를 보이며 삼장법사에게 큰 절을 올렸다.
“스승님, 이 술은 원래 스승님께서 먼저 드셔야 마땅하지만, 국왕께서 제게 직접 주셨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먼저 마시겠습니다.
기운을 돋우어 요괴를 잡아오겠습니다.”
그는 술을 한 번에 들이켜고, 잔을 다시 가득 채워 삼장에게 내밀었다.
삼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 너희 형제들이나 마시도록 하거라.”
이 말을 듣고 오정이 앞으로 나와 술잔을 받아들었다.
팔계는 발밑에서 구름을 일으키더니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를 본 국왕이 감탄하며 말했다.
“돼지 장로가 구름을 타고 다니기까지 하는군!”
팔계가 떠난 후, 오정도 술잔을 들고 한 번에 비웠다.
그는 삼장법사에게 말했다.
“스승님, 황포 요괴가 스승님을 붙잡았을 때, 저와 형님이 함께 싸웠으나 겨우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 형님이 홀로 간다면, 요괴를 이기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삼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너라도 가서 팔계를 도와주거라.”
오정은 이 말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이를 본 국왕은 다급히 삼장을 붙잡고 말했다.
“장로님, 부디 짐과 함께 여기 머물러 계시오. 구름 타고 떠나지 마시오.”
삼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폐하. 저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장과 국왕은 궁에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정이 팔계를 따라잡으며 외쳤다.
“형님, 저 왔습니다!”
저팔계가 돌아보며 말했다.
“동생, 왜 왔느냐?”
오정이 답했다.
“스승님께서 형님을 돕도록 저를 보내셨습니다.”
팔계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잘 왔다, 동생. 우리 둘이 힘을 합쳐 그 요괴를 잡으면, 이 나라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게다.”
그들은 구름을 타고 국경을 떠나 산속 동굴을 향해 날아갔다.
“상광(祥光)이 국경을 넘어 떠오르고, 서기(瑞氣)가 경성을 떠나 흐르도다.
왕명을 받고 산속 동굴로 향하니, 힘을 합쳐 요괴를 잡으리라.”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요괴의 동굴에 도착해 구름에서 내려섰다.
팔계는 구치정파(九齒釘鈀)를 뽑아 들고 파월동(波月洞)의 문을 있는 힘껏 쳐서 커다란 구멍을 냈다.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깜짝 놀라 황급히 문을 열고 이들을 보고는 뛰어 들어가 외쳤다.
“대왕, 큰일 났습니다! 긴 주둥이에 큰 귀를 가진 중과,
칙칙한 얼굴을 한 중이 다시 와서 문을 부숴 버렸습니다!”
요괴 왕이 놀라며 말했다.
“저팔계와 사오정인가? 내가 그들의 스승을 풀어줬는데, 어찌 감히 다시 내 문을 치는가?”
작은 요괴가 대답했다.
“아마도 물건을 잊고 가서 찾으러 온 것 같습니다.”
요괴 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내 문을 치겠느냐?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갑옷을 정비하고 칼을 손에 쥔 채 밖으로 나섰다.
요괴 왕은 팔계와 오정을 보며 외쳤다.
“중놈들아, 내가 너희 스승을 풀어줬는데, 어찌 감히 다시 내 문을 치느냐?”
팔계가 냉소하며 말했다.
“이 악질 요괴야,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요괴가 되묻자 팔계가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보상국(寶象國) 셋째 공주를 속여 동굴로 데려가 강제로 아내로 삼았고, 13년 동안 살았다.
이제 그녀를 돌려보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
나는 국왕의 명을 받고 너를 잡으러 왔다.
네가 알아서 줄을 묶고 나와 항복하면 고생시키지 않을 테니, 어서 나오거라.”
요괴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
그의 눈은 불꽃처럼 이글거렸고, 번뜩이는 커다란 강철 칼을 들어 팔계에게 달려들었다.
팔계는 몸을 비켜 칼을 피한 뒤 구치정파로 요괴를 맞받아쳤다.
뒤이어 오정도 보물 지팡이를 휘두르며 합세했다.
그들은 산봉우리 위에서 격전을 벌였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치열한 싸움이었다.
이를 노래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분노를 부르고,
독한 의도와 상처로 싸움은 격화된다.
요괴 왕은 강철 칼로 머리를 겨누고,
저팔계는 구치정파로 정면을 막아선다.
사오정은 보물 지팡이를 휘둘러 전투에 가세하니,
요괴 왕은 신기를 휘두르며 맞선다.
날뛰는 요괴와 두 신승,
서로 공격하고 막으며 숨 돌릴 틈이 없다.
팔계는 소리쳤다.
“네가 공주를 강제로 빼앗아 국체를 훼손했으니,
죽음으로 죗값을 치를 것이다!”
요괴는 맞받아쳤다.
“네 놈이 참견하는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한 장의 편지에서 비롯되었으니,
승려와 요괴 모두 평온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산비탈 앞에서 팔 구합 정도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팔계는 점점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고, 구치정파(九齒釘鈀)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요괴를 이기지 못했을까?
처음 싸움이 시작됐을 때는 호법신들이 동굴 안에 있는 삼장을 보호하며 몰래 저팔계와 사오정을 도왔기 때문에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모든 신들은 보상국으로 가서 삼장을 지키고 있었으니, 두 사람만으로는 요괴를 상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팔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오정아, 네가 나서서 요놈과 싸워라. 나는 잠시 일을 보고 오마.”
그는 오정에게 요괴를 맡기고는 산속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팔계는 허둥지둥 땅에 엎드려 쑥과 덩굴, 가시나무 속으로 파고들었다.
머리카락이 찢기고 얼굴이 긁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덩굴 속에 몸을 웅크리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밖으로 나올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는 귀 한쪽을 세우고 멀리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만 조용히 엿들었다.
요괴는 팔계가 도망치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오정에게 달려들었고
오정은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요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요괴는 오정을 덥석 움켜쥐고 동굴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작은 요괴들은 오정의 사지를 팽팽하게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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