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西遊記 Journey to the West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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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장
화과산(花果山)의 요괴들 다시 모이고,
흑송림(黑松林)에서 삼장 법사가 요괴를 만나다.
오공은 비록 삼장에게 쫓겨났으나,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탄식을 멈출 수 없었다.
이윽고 동양대해(東洋大海)가 눈앞에 펼쳐지자 그는 말했다.
“내가 이 길을 떠난 지도 어언 500년이 되었구나!”
그 바다의 모습은 이러했다:
연무가 가득한 물결은 하늘의 은하수를 잇고,
거대한 파도는 땅의 맥을 따라 흐른다.
밀려오는 파도는 천둥 같은 굉음으로 삼월의 폭풍을 닮았고,
깊이 스며드는 물은 거센 바람이 부는 칠월의 광란 같았다.
용을 타고 오가는 복로(福老)는 험한 물결에 찡그릴 수밖에 없고,
학을 탄 선동(仙童)은 이 바다를 지날 때마다 근심했다.
해안 근처에는 마을도 없고,
물가에도 어선 한 척 보이지 않는다.
파도는 천 년 눈처럼 흩날리고,
바람은 유월에도 가을을 느끼게 한다.
들새는 맘껏 오르내리고,
모래밭 새들은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눈앞에는 낚시꾼도 보이지 않고,
귀가에는 갈매기 소리만 들릴 뿐이다.
바다 밑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유영하며 즐거워하나,
하늘 끝을 날아가는 기러기는 근심 가득하다.
오공이 몸을 솟구쳐 동양대해를 훌쩍 넘자, 이내 화과산(花果山)에 도착했다.
그는 구름을 내리고 눈을 크게 뜨고 산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산에는 꽃과 풀이 모두 사라졌고, 안개와 노을도 자취를 감췄다.
산봉우리와 바위는 무너져 내렸으며, 숲과 나무는 모두 타버렸다.
그는 깜짝놀라 비통한 마음으로 탄식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산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천계를 소란스럽게 한 후
천궁(天宮)으로 끌려갔을 때,
현성 이랑신(顯聖二郎神)이 매산(梅山)의 일곱 형제를 이끌고 이 산으로 내려와 불태운 흔적만 남았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더욱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이를 증명하는 고풍(古風)의 한 구절이 있다.
옛날의 선산(仙山)을 되돌아보니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리고,
눈앞의 산을 보며 더욱 슬프고 애통하도다.
그때는 산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었으나,
오늘에야 땅이 허물어졌음을 깨달았구나.
한탄스럽다, 이랑이 나를 멸망시켰고,
억울하도다, 소성이 사람들을 속였구나.
흉악하게 내 선조의 무덤을 파헤치고,
아무 이유 없이 너희 조상의 묘지를 훼손했구나.
하늘 가득했던 노을과 안개는 모두 사라졌고,
땅 위를 가득 덮던 바람과 구름도 드문드문해졌네.
동쪽 고지에서는 얼룩 호랑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서쪽 산에서도 흰 원숭이 울음소리는 사라졌네.
북쪽 계곡에는 여우와 토끼의 흔적조차 없고,
남쪽 골짜기에는 노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네.
푸른 바위는 타서 천 조각의 흙으로 변했고,
옥빛 모래는 녹아 한 줌의 진흙이 되었네.
동굴 밖의 우거진 소나무는 모두 쓰러져 있고,
절벽 앞의 푸른 잣나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네.
느티나무, 삼나무, 회화나무, 향나무,
밤나무, 자단목이 모두 타버렸네.
복숭아, 살구, 자두, 매화, 배, 대추나무도 모두 사라졌고,
뽕나무가 끊겨 누에를 기를 수 없으며,
버드나무와 대나무가 드물어 새들이 깃들기 어렵네.
봉우리의 멋진 바위는 모두 먼지가 되었고,
계곡 아래 샘물은 말라서 풀밭으로 변했네.
절벽 앞의 검은 흙에는 난초 한 포기 없고,
길가의 붉은 진흙에는 칡덩굴만 자라나네.
과거의 새들은 어디로 날아갔는가?
당시의 짐승들은 어느 산으로 갔는가?
표범과 뱀은 이 기울어진 곳을 싫어하고,
학과 독사는 이 황폐한 곳을 피해갔네.
이 모든 재난은 어쩌면 내가 전에 품었던 악한 생각들로 인해,
지금 이 고난을 겪고 있는 결과일지도 모르겠구나.
슬픔에 잠겨 있던 손오공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향기로운 풀밭과 만경오(曼荊凹) 속에서 일곱, 여덟 마리의 작은 원숭이들이 뛰어나와 오공을 둘러싸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성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셨군요!”
손오공이 말했다.
“너희들은 어째서 놀지도 않고 모두 자취를 감추었느냐?
내가 한참이나 있었는데도 너희를 볼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작은 원숭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성께서 천계에 끌려간 이후, 저희는 사냥꾼들의 괴롭힘에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강력한 쇠뇌와 활, 황색 매와 사나운 개, 그리고 그물과 창에 시달리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굴 속 깊이 숨고 둥지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배고프면 언덕에 나가 풀을 뜯어 먹고, 목이 마르면 계곡 아래 맑은 샘물을 마셨습니다.
방금 대성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 나와 뵙고 있사오니, 저희를 구해 주시옵소서.”
손오공은 그 말을 듣고 더욱 슬퍼하며 물었다.
“이 산에 남아 있는 자들이 몇이나 되느냐?”
원숭이들이 대답했다.
“나이 많은 이들과 어린 것들 모두 합쳐 천여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오공이 말했다.
“내가 이 산에서 다스리던 무리는 4만 7천의 요괴였는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원숭이들이 대답했다.
“대성께서 떠나신 후, 이 산은 이랑 보살(二郎菩薩)이 불을 질러 요괴들 대부분이 죽였습니다.
저희는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계곡 안으로 들어가거나 철판교 아래에 숨어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불길이 꺼진 뒤에야 밖으로 나왔으나,
화과가 없이 살아갈 수 없어 절반은 다른 곳으로 떠났고,
남은 절반은 여기 산 속에서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에 사냥꾼들에게 또다시 절반이나 잡혀갔습니다.”
손오공이 물었다.
“그들이 너희를 잡아가서 무엇을 하더냐?”
원숭이들이 대답했다.
“그 사냥꾼들은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저희를 활로 쏘거나 창으로 찔러 죽이고는,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어
소금에 절이고, 기름에 튀기고, 찌고 삶아서 밥반찬으로 삼습니다.
그물에 걸리거나 덫에 잡힌 이들은 살아서 끌려가 곡예를 하며,
그들의 명령에 따라 바퀴 돌기, 곤충 자세 흉내 내기 등을 하며 거리에서 북과 징 소리를 울리며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손오공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며 물었다.
“동굴 안에는 누구를 남겨 두었느냐?”
원숭이들이 대답했다.
“마원수(馬元帥)와 류원수(流元帥), 그리고 붕장군(崩將軍)과 파장군(芭將軍)이 남아 있습니다.”
손오공이 말했다.
“그들에게 내가 돌아왔다고 전하라.”
작은 요괴들이 동굴로 달려가 말했다.
“대성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마원수와 류원수, 붕장군과 파장군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오공을 맞이해 동굴로 모셔 들였다.
오공은 동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고, 모든 요괴들은 그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대성 할아버지, 근래 대성이 목숨을 건져 삼장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전을 가지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쪽으로 가지 않고, 이 산으로 돌아오셨습니까?”
손오공이 말했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그 삼장이라는 자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다.
내가 그를 위해 길에서 요괴를 잡고 마귀를 무찌르며 온갖 재주를 다 부려 몇 번이나 요괴를 때려 죽였건만,
그는 내가 흉악무도한 짓을 한다며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나를 쫓아내고,
결국 내쫓는 서찰까지 써서 다시는 나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외쳤다.
“좋은 일이로군요! 왜 스님 노릇을 하십니까?
차라리 여기에 머물며 우리와 함께 몇 년 동안 놀아주시지요.”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 야자주(椰子酒)를 준비하여 대성 할아버지를 위해 환영연을 열어라!”
손오공이 말했다.
“술은 나중에 마시고, 우선 너희에게 물을 것이 있다.
이 산에 사냥꾼들이 얼마나 자주 찾아오느냐?”
마원수와 류원수가 대답했다.
“대성님, 그들이 오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찾아와 괴롭히고 있습니다.”
손오공이 물었다.
“오늘은 왜 오지 않았느냐?”
마원수가 대답했다.
“아마 곧 올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오공은 지시했다.
“모두 나가서 이 산에 불에 타서 부스러진 돌들을 주워다가 모아 두거라.
둘이나 셋이 모여 한 무더기를 만들든, 다섯이나 여섯이 모여 쌓든, 내게 필요하다.”
작은 원숭이들은 벌떼처럼 흩어져 산에서 돌들을 모아 무더기를 쌓았다.
손오공은 그것을 보고 말했다.
“너희는 모두 동굴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어라. 이제 내가 나서겠다.”
손오공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보았다.
남쪽 반대편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징 소리가 땡땡 울려 퍼졌다.
그곳에는 천여 명의 병사와 말들이 독수리와 사냥개를 데리고 칼과 창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오공은 그들이 오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매우 흉포하고 용맹스러웠다.
그들의 모습은 이러했다.
여우 가죽으로 어깨를 덮고, 비단으로 허리와 가슴을 감싸고,
주머니에는 늑대 이빨 화살을 꽂고, 허리에는 보물처럼 소중한 조각 활을 걸고 있었다.
사람은 마치 산을 수색하는 호랑이 같고, 말은 계곡을 뛰어넘는 용 같았다.
무리 지어 개를 이끌고, 팔 가득 매를 얹고 있었다.
덤불 바구니에 화약통을 싣고, 바다동청(海東青, 매의 일종)을 데리고 있었다.
긴 대나무 장대와 토끼를 잡는 갈퀴가 가득했으며,
소머리 모양의 사냥망과 악령의 손처럼 생긴 덫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며 천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공은 사냥꾼들이 산을 점령하려는 모습을 보고 크게 분노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주문을 외고,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동남쪽 방향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큰 바람을 내뿜었다.
그 바람은 정말 대단했다! 그 모습을 묘사하면 이러하다.
먼지가 흩날리고 흙이 날아다니며 나무는 뽑히고 숲은 쓰러졌다.
바다 물결은 산처럼 솟구쳤고, 격랑은 수천 겹으로 밀려들었다.
하늘과 땅은 혼탁하고, 해와 달은 어두워졌다.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호랑이 울음소리 같고,
대나무 숲을 지나며 울리는 소리는 용의 울음소리 같았다.
수많은 균열에서 격렬한 바람이 분출하며 하늘을 흔들었고,
모래와 돌이 날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오공이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자, 부서진 돌들이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춤을 추었다.
이 광경에 천여 명의 병사와 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시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돌에 맞아 머리가 산산조각 나고,
날아다니는 모래에 말들이 상처를 입었다.
관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피로 물든 땅은 붉은 사암처럼 변했다.
부자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빈랑처럼 되돌아갈 길이 없었다.
시체는 가루처럼 산야에 흩어지고,
붉은 옷 입은 여인은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시에서 이르기를
사람은 죽고 말은 쓰러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들판에는 외로운 귀신과 떠도는 혼령이 마치 엉킨 삼실처럼 어지럽다.
불쌍하도다, 몸을 떨던 영웅들은
선악도 가리지 못한 채 피로 물든 모래 위에 쓰러졌다.
오공은 구름에서 내려와 박수치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해!
내가 삼장에게 귀의하고 승려가 된 뒤, 그는 항상 이렇게 타이르곤 했다.
‘천일을 선행을 행해도 선이 부족하고, 하루 악행을 하면 그 악은 남아돌게 된다.’
참으로 맞는 말이구나!
내가 삼장과 함께 다닐 때 몇몇 요괴를 죽이기만 해도,
그는 내가 행패를 부린다고 나무랐다.
하지만 오늘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 많은 사냥꾼을 모조리 죽이고야 말았구나.”
그리고 손오공이 외쳤다.
“얘들아, 나오너라!”
거센 바람이 멎자, 오공의 목소리를 들은 원숭이들이 하나둘씩 뛰어나왔다.
오공이 말했다.
“너희들은 남산 아래로 가서,
죽은 사냥꾼들의 옷을 벗겨 가져오너라. 피를 깨끗이 씻고 입어서 추위를 막아라.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만장 깊이의 연못으로 밀어 넣고,
쓰러진 말은 끌어와서 가죽을 벗겨 부츠로 만들어 신고,
고기는 절여 두었다가 천천히 먹도록 해라.
그들의 활과 화살, 창과 칼은 가져다가 너희들이 무술을 연습하는 데 쓰고,
그들의 알록달록한 깃발도 거두어 내가 쓰겠다.”
원숭이들은 일제히 응답하며 명령을 따랐다.
오공은 깃발들을 해체하고 씻은 뒤, 모두 모아 하나의 알록달록한 깃발로 만들었다.
깃발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화과산(花果山)을 다시 세우고, 수렴동(水簾洞)을 재정비하다.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은 깃대를 세우고 깃발을 동굴 밖에 내걸었다.
그는 매일 요괴들을 불러모으고, 짐승들을 모으며, 풀을 쌓아 저장하고 양식을 마련했다.
이제 더 이상 “승려”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의 인품은 넓었고, 능력은 출중했다.
그는 사해의 용왕들을 찾아가 선계의 단비를 빌려 산을 깨끗이 씻었다.
앞쪽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뒤쪽에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으며,
복숭아, 자두, 대추, 매실 등 다양한 과일나무를 심어 부족함이 없게 만들었다.
그는 유유자적하며 안락한 생활을 시작했으니, 여기에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다시 삼장으로 돌아가 보자.
삼장은 꾀 많은 팔계를 믿고 오공을 풀어주었고,
말에 올라탔다.
팔계는 앞에서 길을 열고, 오정은 짐을 메고 뒤따랐다.
그들은 백호령을 지나, 넓게 펼쳐진 숲이 나타난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진정 멋진 풍경이었다.
덩굴이 얽히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렀으며,
삼장 법사는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제자들아, 이 산길은 험난하구나.
게다가 소나무 숲이 빽빽하고 나무들이 가득해
혹시라도 요괴나 짐승이 나타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팔계는 기운을 차리고 말했다.
“오정아, 말를 끌고 있어라.
내가 갈고랑이를 사용해 길을 열고 앞장서겠다.”
팔계는 손에 든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들고 길을 열며 삼장 법사를 소나무 숲으로 이끌었다.
길을 걷다가 삼장은 말을 멈추고 말했다.
“팔계야,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정말 배가 고프구나.
어디 가서 공양을 좀 구해 오너라.”
팔계가 대답했다.
“스승님, 말에서 내리시지요.
여기서 기다리시면 제가 가서 찾아오겠습니다.”
삼장은 말에서 내려 기다렸고, 사승은 짐을 내려놓고 팔계에게 발우를 건넸다.
팔계는 그것을 받아들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삼장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팔계는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은 걱정 마십시오.
얼음 속에서 불을 찾아내고, 눈 속에서 기름이라도 짜내어 공양을 구해 오겠습니다.”
팔계는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십여 리를 걸었으나, 한 집도 만나지 못했다.
정말 늑대와 호랑이는 있어도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팔계는 걷느라 지쳐 속으로 중얼거렸다.
“옛날에는 오공이 있을 때, 스승님이 원하면 곧바로 생겨났었지.
이제는 내 차례가 되니 정말 ‘집을 맡아야 쌀과 장작의 값을 알고,
자식을 키워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더니만.
그런데 이 공정한 세상에 공양을 구할 곳이 없단 말인가?”
계속 걷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팔계는 다시 생각했다.
“그냥 돌아가서 스승님께 공양을 구할 곳이 없었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게 뻔하구나.
시간을 좀 더 끌어야 돌아가서 말하기 좋겠지.
그래, 그래, 저 풀밭에 가서 잠깐 눈 좀 붙이자.”
팔계는 머리를 풀숲에 파묻고 잠들었다.
처음에는 잠깐만 자고 일어나려 했지만,
길 걷느라 피곤했던 그는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팔계가 잠든 이야기는 잠시 미뤄 두고,
다시 삼장으로 돌아가 보자.
삼장은 숲속에서 귀가 뜨거워지고 눈꺼풀이 떨리며 마음이 불안해졌다.
삼장은 급히 사승을 불러 말했다.
“팔계가 공양을 구하러 갔는데, 어찌 이토록 늦도록 돌아오지 않느냐?”
오정이 대답했다.
“스승님,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서쪽에선 공양을 올리는 집이 많다지만,
팔계는 배가 커서 배부르게 먹고 나서야 돌아올 겁니다.”
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구나. 혹시나 공양을 먹느라 늦어진다면 어찌 우리가 그를 찾겠느냐.
날도 저물어가니, 여기서 묵을 수는 없으니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하겠구나.”
오정이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
여기 계십시오. 제가 가서 그를 찾아오겠습니다.”
삼장이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공양을 구하지 못해도 좋으니, 묵을 곳부터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오정은 보장을 집어 들고 소나무 숲 밖으로 나가 팔계를 찾으러 떠났다.
삼장은 몹시 답답하고 지쳐 숲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억지로 정신을 다잡으며 일어나, 짐을 한곳에 모으고 말을 나무에 묶었다.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 내려놓고, 지팡이를 땅에 꽂은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천천히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했다.
삼장은 들풀과 산꽃을 둘러보며,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마음을 달래려 했으나,
그 소리마저 위안을 주지 못했다.
이 숲속은 풀이 무성하고 길이 좁은 곳이 많았다.
마음이 어지러운 탓에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마음도 가라앉히고, 팔계와 사승을 찾으려던 것이었지만,
둘은 서쪽 길로 가고 삼장은 남쪽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삼장은 숲을 벗어나자 고개를 들어
저편에 금빛이 반짝이고 오색이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황금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보탑이었다.
이는 서쪽으로 지는 해가 금빛 탑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장은 말했다.
“내 제자들은 어찌 이 탑을 알아채지 못한단 말인가?
동토(東土)를 떠난 뒤로, 절을 만나면 향을 피우고,
부처를 만나면 절을 하며, 탑을 보면 청소하기로 맹세했건만!
저 빛나는 것이 황금 보탑이 아니겠는가?
왜 그 길로 가지 않았던가?
탑 아래에는 반드시 사찰이 있을 것이고,
절 안에는 승려가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가 보자.
이 짐과 백마는 이곳에 놔두어도 문제없을 것이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니 문제될 일이 없겠지.
만약 저곳이 우리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이라면,
제자들이 돌아오면 함께 쉬도록 하자.
아, 그러나 이때 삼장의 불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탑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의 풍경은 다음과 같았다.
절벽이 만 길이나 높아 하늘에 닿을 듯하며, 산은 푸른 하늘과 이어져 있다.
뿌리는 땅에 깊이 박혔고, 봉우리는 하늘에 뻗어 있다.
양쪽으로는 잡목 수천 그루가 우거져 있고, 앞뒤로는 수백 리에 걸쳐 덩굴이 얽혀 있다.
꽃은 풀끝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물은 바위틈 사이로 흐른다.
쓰러진 나무가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고, 말라버린 덩굴이 반짝이는 봉우리에서 늘어져 있다.
돌다리 아래로는 맑은 샘물이 흐르고, 대좌 위에는 하얀 먼지가 쌓여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삼신산(三神山)의 천국 같고,
가까이서 보면 봉래(蓬萊)의 승경처럼 보인다.
향기로운 소나무와 자줏빛 대나무가 산 계곡을 에워싸고,
까마귀, 까치, 원숭이들이 험준한 산등성이를 오르내린다.
동굴 문 밖에는 드나드는 짐승들이 줄지어 다니고,
숲속에는 들락거리는 새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싱그러운 풀은 푸르고, 화려한 들꽃은 활짝 피어 있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히 악한 기운이 서린 땅이었다.
불운한 삼장은 그만 이곳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삼장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탑문 아래로 다가갔다.
문 안쪽에는 대나무로 엮은 발이 걸려 있었다.
그는 발을 들어 올리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보니, 돌로 된 침상 위에 한 요괴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 요괴의 생김새는 이러했다.
얼굴은 푸른빛에 가깝고, 흰 송곳니가 드러난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다.
양쪽 관자놀이에는 붉게 물든 머리털이 헝클어져 있고,
짙은 자줏빛 수염은 마치 잘 익은 여지의 새싹 같았다.
독수리 부리처럼 굽은 코는 위로 솟아 있었고, 별
빛처럼 반짝이는 두 눈은 번뜩였다.
두 주먹은 마치 승려의 발우 크기만 했고,
푸른 발은 거친 나뭇가지처럼 울퉁불퉁했다.
옅은 황색의 옷을 걸쳤는데,
그 화려함이 비단 승려의 가사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손에는 반짝이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었고,
머리맡에는 흠 없는 매끄러운 돌을 베개 삼고 있었다.
그는 젊은 요괴들을 모아 전투를 지휘한 적도 있었고,
오래된 요괴들 사이에서 권력을 누린 적도 있었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경외를 받으며,
술잔을 들고 달빛 아래 잔치를 벌였고,
바람을 타고 차를 내리며 놀았었다.
그의 신통력은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사이 천하를 유람했다.
깊은 숲에서는 새와 짐승들이 떠들썩했고,
울창한 덤불에서는 용과 뱀이 잠들어 있었다.
작고 협소한 동굴은 지옥의 끝자락까지 닿지 못했지만,
이 무시무시한 요괴는 마치 우두머리 야차처럼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삼장은 그의 끔찍한 모습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한 발 물러섰고,
온몸이 얼어붙으며 다리가 풀렸다.
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하자,
요괴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를 눈치챘다.
그는 번쩍이는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이봐! 바깥에 무슨 놈이 서성거리는 거냐?”
작은 요괴 하나가 머리를 문 밖으로 내밀고 살펴보더니 말했다.
“대왕님, 바깥에 스님 한 분이 계십니다.
반질반질한 대머리에 크고 둥근 얼굴을 가졌으며,
귀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큽니다.
고운 피부와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정말 훌륭한 스님입니다!”
요괴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뱀 머리에 붙은 파리, 하늘이 준 밥상’이라는 말 아니겠느냐?
너희들, 어서 나가 그놈을 붙잡아라.
잡아오면 상을 두둑히 주마!”
작은 요괴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삼장을 향해 달려갔다.
삼장은 이들을 보고 깜짝 놀라,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하지만 마음은 화살처럼 급했으나, 다리는 마비된 듯 무겁고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산길은 험난하고, 숲은 깊고 어두웠다.
결국 그는 걸음을 옮길 수 없었고, 요괴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시에서 이르기를
용도 얕은 물에 들어오면 새우에게 놀림당하고,
호랑이도 평지에 내려오면 개에게 조롱당하네.
좋은 일에도 장애는 늘 따르거늘,
서방을 향하는 길 위의 삼장은 더욱 험난하도다.
작은 요괴들은 삼장을 붙잡아 대나무 발 앞에 내려놓고는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대왕님! 스님을 붙잡아 왔습니다!”
늙은 요괴는 슬쩍 눈을 돌려 삼장을 훑어보았다.
삼장의 정갈한 머리와 단정한 모습은 실로 훌륭한 스님의 모습이었다.
요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훌륭한 중이라면 틀림없이 높은 신분의 인물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간단히 굴복하진 않을 테니, 위세를 보여줘야만 하겠군.’
요괴는 갑자기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붉은 수염이 곤두서고,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쳤다.
눈은 터질 듯 부릅뜨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중을 안으로 데려오너라!”
작은 요괴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대왕님!”
그리고는 삼장을 밀어 넣었다.
삼장은 ‘낮은 처마 아래서는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옛말처럼,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요괴가 말했다.
“너는 어디의 중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자냐? 어서 말해라!”
삼장이 대답했다.
“저는 당나라의 승려로, 당 황제의 명을 받아 서방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는 중입니다.
지나가던 길에 이 산에서 귀탑을 찾아 예를 올리고자 들렀습니다.
뜻하지 않게 폐를 끼쳤으니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쪽에서 경을 가져오면, 황제께서 귀하신 분의 이름을 길이 새기게 하겠습니다.”
요괴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높은 신분의 인물이라 생각은 했지만, 과연 그렇군.
너를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알아서 오다니, 아주 잘 왔다!
놓아줄 리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지.”
요괴는 작은 요괴들에게 명령했다.
“저 중을 묶어라!”
작은 요괴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삼장을 밧줄로 단단히 묶고,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정혼주(定魂柱)에 묶어 세웠다.
늙은 요괴가 칼을 들고 삼장에게 다시 물었다.
“너희 일행은 몇 명이냐? 설마 혼자서 서천으로 가겠다는 건 아닐 테지?”
삼장은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겁을 먹고 솔직히 말했다.
“대왕님, 저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저팔계와 사오정인데, 그들은 공양을 구하러 송림에 갔습니다.
그리고 제 짐과 흰 말도 그곳에 있습니다.”
요괴는 기뻐하며 말했다.
“운이 좋군! 제자 둘에 너까지 세 명, 거기에 말까지 합치면 네 명이니, 한 끼로는 충분히 배불리 먹겠구나!”
작은 요괴들이 말했다.
“우리가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그러나 늙은 요괴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굳이 나갈 필요 없다. 앞문을 닫아라.
그 두 놈이 공양을 구하러 갔다면 분명히 스승을 찾으러 올 것이다.
스승을 못 찾으면 이곳까지 올 테니, 이 얼마나 쉬운 사냥이냐!
잠시 기다렸다가 천천히 잡아오면 된다.”
작은 요괴들은 즉시 앞문을 닫아 걸었다.
삼장이 재앙을 만난 이야기는 잠시 뒤로 하고,
오정이 송림을 나와 저팔계를 찾으러 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오정은 십 리 넘게 걸어갔지만, 근처에 마을이나 사람이 있는 흔적은 전혀 없었다.
높은 둔덕 위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풀숲 속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급히 지팡이로 깊은 풀숲을 헤치고 가보니, 팔계가 그곳에서 꿈을 꾸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오정은 팔계의 귀를 잡아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형님, 스승님께서 공양을 구하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주무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팔계는 허둥지둥 깨어나며 말했다.
“아우야, 지금 몇 시쯤 되었느냐?”
오정이 대답했다.
“얼른 일어나십시오! 스승님께서는 공양이 있건 없건 상관없으니,
형님과 제가 함께 머물 곳을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저팔계는 멍한 상태로 공양 그릇을 들고 구치정파(九齒釘耙)를 짚은 채, 사오정과 함께 송림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숲에 도착해 보니 스승님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정은 팔계를 탓하며 말했다.
“모두 형님 탓 입니다!
형님이 공양을 구하러 갔으면서 돌아오지 않아서, 분명히 요괴가 스승님을 잡아갔을 것입니다.”
저팔계는 웃으며 대답했다.
“형제야, 헛소리하지 마라.
이 송림은 조용하고 깨끗한 곳인데, 요괴가 있을 리가 있겠느냐.
아마도 스승님께서 오래 앉아 계시지 못해 어디 산책을 나가셨을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찾아보자꾸나.”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말을 끌고 짐을 짊어진 채, 스승님의 삿갓과 염주, 지팡이를 챙겨 송림을 나와 스승님을 찾아 나섰다.
이 장면까지 삼장이 목숨을 잃지 않은 것도 운이 좋았던 셈이다.
저팔계와 사오정은 한참을 찾아다녔으나 스승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남쪽에서 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저팔계가 말했다.
“형제야, 복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더니, 스승님은 틀림없이 저곳에 가셨을 게야.
저 반짝이는 건 보아하니 보물 탑이 아닌가?
누가 감히 스승님을 함부로 대하겠느냐.
아마도 그곳에서 공양을 준비해 대접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도 서둘러 가서 함께 공양을 먹자.”
오정이 대답했다.
“형님, 이게 길한지 흉한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일단 가서 확인해 봅시다.”
두 사람은 당당히 걸어가 금빛이 나는 곳에 다다랐다.
“어라? 문이 닫혀 있군.”
그들은 문 위에 가로로 놓인 흰 옥으로 만든 석판을 보았다.
석판에는 커다란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완자산파월동(碗子山波月洞)’
오정이 말했다.
“형님, 여긴 절이 아닙니다.
요괴의 동굴이 틀림없습니다.
스승님이 여기에 계신다면 틀림없이 위험에 처해 계실 겁니다.”
팔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형제야, 겁먹지 마라.
네가 말과 짐을 묶어 두고 지키고 있어라.
내가 가서 상황을 알아보마.”
저팔계는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들고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문 열어라! 문 열어!”
동굴 안에서는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가 보고했다.
“대왕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이라니? 어디서 온 누구냐?”
“문 밖에 한 명은 길쭉한 입과 큰 귀를 가진 중이고, 또 한 명은 검고 칙칙한 얼굴을 한 중입니다.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늙은 요괴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스승을 찾으러 왔구나.
그래, 길도 제법 잘 찾는군.
어떻게 내 문 앞까지 찾아왔을까?
생김새도 만만치 않으니, 무시하지 말고 제대로 상대해야겠다.”
늙은 요괴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갑옷과 무구를 가져오라.”
부하 요괴들은 즉시 그의 갑옷과 무기를 가져왔고, 늙은 요괴는 칼을 쥐고 당당히 문 밖으로 나섰다.
한편, 저팔계와 사오정이 동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요괴가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의 차림새는 이러했다.
푸른 얼굴에 붉은 수염, 불타는 듯한 머리칼은 흩날리고,
황금 갑옷은 빛을 내며 찬란했네.
돌로 만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슴을 두른 갑옷은 구름처럼 가벼웠다.
산 앞에 우뚝 서니 바람은 으르렁거렸고,
바다를 유유히 다니며 파도를 넘었도다.
푸르스름하게 탄 두 손은 거칠었으며,
손에는 영혼을 쫓는 살인 검을 쥐었네.
그의 이름을 묻거든 황포(黃袍)요괴라 부르리라.
황포요괴는 동굴 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이봐, 너희는 어디서 온 중이냐? 왜 내 문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것이냐?”
저팔계가 나서며 대꾸했다.
“이놈아, 내 얼굴이 안 보이느냐?
나는 너희 ‘할아버지’다.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는 중이다.
내 스승님은 황제의 명을 받은 삼장법사이시다.
만약 내 스승님이 이 안에 있다면, 어서 내놓아라.
그러면 내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요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너희 말이 맞다.
삼장이라는 중 한 명이 내 집에 있다.
그를 홀대하지는 않았다.
방금 막 인육으로 만든 만두를 준비해 대접하려던 참이었다.
너희도 들어와서 하나씩 먹어보는 게 어떠냐?”
팔계는 요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를 본 오정이 급히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형님, 저놈이 형님을 속이는 겁니다.
형님이 언제부터 사람 고기를 먹었단 말입니까?”
그제야 정신이 든 팔계는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빼들고 요괴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요괴는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강철 검으로 맞받아쳤다.
둘은 서로의 신통력을 발휘하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
이를 본 오정은 행장을 내려놓고 백마를 묶은 뒤 보물 지팡이를 들어 급히 합세했다.
하늘에서는 두 강력한 승려와 난폭한 요괴 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봉이 날아오르고 칼이 맞받으며,
철퇴가 내리치고 검이 막아선다.
요괴는 기세등등하게 위세를 부리고,
승려들은 신통력을 발휘한다.
구치정파는 진정한 영웅의 무기요,
요괴를 제압하는 보물 지팡이는 거침없다.
전방도 후방도 없이 사방에서 공격하나,
황포요괴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철 검이 은빛처럼 번쩍이며 빛나고,
그의 신통력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다.
공중에는 안개와 구름이 뒤엉키고,
산중에는 벼랑이 무너지고 산맥이 진동한다.
명예를 위해 물러서지 않는 자들,
스승을 위해 두려움을 모르는 자들,
이 치열한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셋은 하늘 위를 오가며 수십 회합을 싸웠으나, 승패는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서로의 목숨이 걸린 싸움이기에, 둘 중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으며 결판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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