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西遊記 Journey to the West 27
“이 글은 국내외 어떤 번역본도 참고하지 않았으며, 오직 원본을 바탕으로 직접 번역 및 번안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번역 및 번안본의 모든 저작권은 Redstonewisdom.com에 있습니다.
최대한 원문의 내용을 보전하되 상상력을 보태어 번안하였습니다.
제 27장
시체 요괴가 세 번이나 삼장을 희롱하고,
성스러운 승려가 미후왕(美猴王)을 내쫓다.
다음 날 아침, 삼장 법사와 제자들은 여장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진원대선은 손오공과 의형제를 맺어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니,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아 여러 번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며 다섯, 여섯 날을 묵게 했다.
장로는 불로장생의 약을 먹고 나니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러나 삼장은 경전을 얻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결국 길을 떠났다.
스승과 제자들은 진원대선과 작별하고 길을 나서니, 곧 한참 높이 솟은 산이 눈앞에 보였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아, 저 앞에 험준한 산이 있어 말이 지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다들 조심하도록 하여라.”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오공이 여의봉을 들고 말 앞에 서서 산길을 헤치고 높은 절벽을 오르니,
펼쳐진 풍경이 끝이 없었다.
봉우리는 겹겹이 쌓여 있고, 계곡은 굽이치며 이어진다.
호랑이와 이리가 떼를 지어 달리고, 노루와 사슴이 무리를 이루어 걷는다.
무수한 산돼지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고, 여우와 토끼들도 온 산을 가득 메운다.
천 척의 거대한 비단뱀과 만 길이나 되는 긴 뱀이 기이한 안개를 내뿜고,
괴상한 바람을 토해 낸다.
길가에는 가시덤불이 널려 있고, 산등성이에는 아름다운 소나무와 잣나무가 우뚝 서 있다.
온갖 덩굴과 풀들이 산을 뒤덮어 하늘까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깊고 푸른 바다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남쪽으로는 구름이 열려 북두칠성이 나타난다.
만년의 세월을 품은 기운은 여전히 생생하고,
수천 개의 봉우리가 햇빛을 받으며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다.
스승과 제자들이 험준한 산길을 걸으며 나아가던 중,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하루 종일 걷다 보니 배가 고프구나. 어디 가서 공양을 좀 구해 오너라.”
오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산중턱에서 앞뒤로 마을도 없고 가게도 없는 곳인데, 돈이 있어도 살 곳이 없습니다.
어디서 공양을 구해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삼장은 이 말을 듣고 언짢아져 꾸짖었다.
“이 원숭이 녀석!
네가 양계산(兩界山)에서 여래께 눌려 바위 속에 갇혀 있을 때,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했지.
내가 목숨을 구해 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율을 내려 제자로 삼아 주었건만,
어찌 이리 게으름만 피우고 성의를 보이지 않느냐?”
오공이 억울한 듯 말했다.
“제자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삼장이 다시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면서, 왜 공양을 구하지 않느냐?
내가 배가 고파 어떻게 길을 갈 수 있단 말이냐?
게다가 이 산속은 습하고 기운이 나빠,
이렇게 지체하다간 뇌음산(雷音山)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공은 삼장을 달래며 말했다.
“스승님, 노여워 마십시오. 너무 많은 말씀도 삼가셔야 합니다.
제가 스승님의 성격이 자존심이 강하시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바로 ‘그 주문’을 외우실까 두렵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말에서 내려 편히 앉아 계십시오.
제가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 공양을 구해 오겠습니다.”
오공은 몸을 한 번 날려 구름 위로 뛰어올라 손을 눈에 대고 주변을 살폈다.
서천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적막하여 마을이나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고, 나무만 무성할 뿐이었다.
한참을 살펴보던 중 남쪽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산 양지바른 곳에 붉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말했다.
“스승님, 먹을 것이 생겼습니다.”
삼장이 물었다.
“먹을 것이 무엇이냐?”
손오공이 말했다.
“이 근처에 사람 사는 집이 없어 공양을 구할 수는 없고,
저 남쪽 산에 붉은빛을 띠는 무언가가 보이는데 아마도 잘 익은 산복숭아일 것입니다.
가서 몇 개 따 오면 배를 채우실 수 있을 겁니다.”
삼장은 기뻐하며 말했다.
“출가한 사람이 복숭아를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겠구나.”
오공은 발우를 들고 상서로운 빛을 타고 남쪽 산으로 복숭아를 따러 날아갔다.
그의 몸은 쏜살같이 구름 위로 솟구쳤고 차가운 바람이 스쳐갔다.
잠시 후, 오공은 남쪽 산에 도착해 복숭아를 따기 시작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산이 높으면 요괴가 있고, 고개가 험하면 정령이 깃든다”라 하였다.
과연 그 산에도 요괴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대성이 산에 오르자 요괴가 이를 감지하고 깨어났다.
요괴는 구름 위에 올라 음산한 바람을 밟으며 삼장이 땅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참으로 행운이구나, 참으로 행운이야!
몇 해 동안 동토에서 온 당나라 승려가 대승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가 바로 금선자(金蟬子)의 환생이며, 열 번의 생을 수행한 본체라 하였다.
그의 고기를 한 점이라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데, 드디어 오늘 이곳까지 왔구나.”
요괴는 삼장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삼장 좌우에는 두 명의 장수가 지키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 두 명의 장수는 바로 팔계와 오정이었다.
팔계와 오정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팔계는 천봉원수(天蓬元帥)였고 오정은 권렴대장(捲簾大將)이었다.
둘의 위엄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요괴는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요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좋다, 우선 장난을 쳐서 이들의 반응을 살펴보도록 하자.”
요괴는 음산한 바람을 멈추고 산골짜기에서 몸을 흔들어 변신했다.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자태의 소녀로 변하니,
맑고 빼어난 눈매와 붉은 입술,
백옥 같은 이목구비를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왼손에는 청사기(靑砂器) 항아리를 들고,
오른손에는 녹자기(綠磁器) 병을 들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곧장 삼장에게 다가갔다.
시에서 이르기를
성스러운 승려 산 기슭에서 말 머물렀네,
갑자기 치마 두른 소녀가 가까이 다가오더라.
초록 소매 흔들며 손끝은 옥처럼 희고,
비단 치마 살짝 당겨 금빛 신발 드러나네.
땀방울 얼굴에 맺히니 꽃잎엔 이슬 같고,
가루 뺨에 그늘 지니 눈썹은 연기 같구나.
눈을 크게 떠서 자세히 바라보니,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와 곁에 서 있도다.
삼장이 이를 보고 말했다.
“팔계야, 오정아, 방금 오공이 여기가 황량한 들판이라 사람 하나 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저기 어여쁜 처자가 오지 않느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스님은 오정과 앉아 계십시오. 제가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팔계는 구치정파(九齒釘耙)를 내려놓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문인인 척 점잖은 태도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볼 때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여자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시에서 이르기를
차가운 피부 속엔 옥 같은 뼈가 있고,
옷깃 사이로 드러난 흰 가슴이 눈부시며,
버들잎 눈썹은 초록빛 띠고, 살구 눈은 은별처럼 반짝인다.
달처럼 생긴 얼굴에 맵시도 고와,
천성이 맑고 깨끗한 기품이 넘친다.
몸은 버드나무 속의 제비 같고,
목소리는 숲 속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같도다.
반쯤 핀 해당화는 새벽빛을 머금었고,
막 피어난 작약은 봄날 아침 햇살을 머금었네.
팔계는 그녀의 고운 모습을 보자 속세의 마음이 동해 참지 못하고 경솔하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어디로 가는 중이오? 손에 든 건 무엇이오?”
그 여자가 요괴인 줄도 모르고 말을 걸었던 것이다.
여자는 공손히 대답했다.
“장로님, 이 푸른 항아리에는 향미밥이 들었고,
녹색 병에는 볶음 면발이 들어 있습니다.
이곳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고,
소원을 이루게 해주신 스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왔습니다.”
팔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허겁지겁 삼장에게로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스승님, ‘착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린다’고 하더니!
스승님이 배고프시다고 하셔서 형님에게 공양을 구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어디선가 복숭아나 따먹으며 놀고 있는지 전혀 소식이 없지 않습니까.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배가 좀 불편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여기 공양을 들고 오는 사람이 바로 찾아왔습니다!”
삼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이 멍청한 놈, 헛소리 작작해라.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길을 오면서 제대로 된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는데,
어디서 공양 올릴 사람이 오겠느냐?”
팔계가 대답했다.
“스승님, 바로 여기에 와 있지 않습니까!”
삼장은 여자를 보자마자 급히 일어나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말했다.
“낭자,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어느 집안에서 이 공양을 준비해 오신 것인지요?
어떤 소원이 있어 산을 넘으며 승려들에게 공양을 드리러 오셨는지요?”
사실 그녀는 요괴였지만, 삼장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요괴는 삼장의 물음에 거짓된 마음을 품고, 꾸며낸 말로 속이기 시작했다.
“스님, 이 산은 뱀이 돌아다니고 짐승들도 무서워하는 백호령(白虎嶺)이라 부르며,
서쪽 아래에 저희 집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경전을 읽고 선행을 베푸시며,
멀리서 오는 승려들에게 공양을 드리는 것을 즐기십니다.
다만 아들이 없어 신께 빌며 복을 구한 끝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다른 집으로 시집보내려 하셨지만,
늙으셨을 때 의지할 곳이 없을까 걱정하셔서 사위를 들여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삼장은 이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낭자, 말씀하신 내용 중 틀린 점이 있소.
경전에서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멀리 떠나지 않고, 떠날 경우 반드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소.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사위도 있다면 그들을 통해 뜻을 이루면 될 텐데,
어찌하여 직접 산을 오르셨소?
또, 수행자를 따르지 않고 홀로 다니는 것은 여인의 도리가 아닙니다.”
여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스님, 제 남편은 북산 골짜기에서 일꾼 몇 명과 함께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그들에게 가져다줄 점심밥입니다.
지금이 오월이라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 제가 직접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멀리서 오신 스님들을 뵈니,
부모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선행이 떠올라,
이 공양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부디 작은 정성을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삼장은 말했다.
“좋소, 좋은 마음이군요.
제자가 지금 복숭아를 따러 갔으니 곧 돌아올 것이오.
그러나 내가 직접 공양을 받는 것은 조심스럽소.
만약 내가 이 음식을 먹고 당신 남편이 알게 되면,
당신이 꾸지람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소?”
여자는 삼장이 끝내 음식을 받으려 하지 않자,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스님, 저희 부모님께서는 공양을 드리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제 남편은 더더욱 선한 분으로, 평생 다리를 고치고 길을 닦으며,
어르신을 공경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헌신해 왔습니다.
오히려 이 공양을 스님께 드렸다고 말씀드리면,
저희 부부의 정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삼장은 여전히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한편, 팔계는 옆에서 그 말에 화가 나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스님이 많다지만, 우리 스승님처럼 답답한 분은 처음이네.
밥이 눈앞에 있는데, 세 덩이나 주어도 안 드시고 그저 그 원숭이가 오기만을 기다리신다니 말이야!”
팔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덥석 청사기 항아리를 뒤집으며 입을 대려 했다.
그때 오공이 남산에서 복숭아 몇 개를 따서 발우에 담아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그는 불꽃 같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그녀가 요괴임을 알아챘고,
발우를 내려놓자마자 철봉을 뽑아 여자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 했다.
깜짝 놀란 삼장이 오공을 붙들고 물었다.
“오공아, 누구를 치려고 그러느냐?”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바로 이 여자입니다.
이 여자가 좋은 사람 같아 보이시겠지만, 실은 요괴입니다.
우리를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삼장이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
평소에 남다른 눈썰미가 있다고 하더니, 어찌하여 오늘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냐?
이 낭자는 선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리려고 온 것뿐인데, 어찌 요괴라 하느냐?”
손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어찌 그걸 모르십니까?
제가 예전에 수렴동에서 요괴 노릇을 할 때 사람 고기를 먹고 싶으면 이런 짓을 했지요.
금은보화를 변신시키기도 하고, 멋진 집으로 꾸미기도 하며, 술 취한 사람이나 여자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홀려 데려가서 찜통에 넣거나 끓여 먹기도 하고,
남으면 말려 두었다가 궂은 날을 대비했지요.
스승님, 제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마 이 계략에 빠져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가셨을 겁니다!”
그러나 삼장은 여전히 요괴가 아니라며 오공을 믿지 않았다.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저 여자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신 게 분명하군요.
만약 그리 마음이 동하셨다면, 팔계에게 몇 그루 나무를 베어오게 하고 오정에게는 짚을 구해 오게 하십시오.
제가 목수 노릇을 하여 여기서 집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두 분이 혼례를 올리신다면, 우리도 모두 흩어질 것이니,
경전을 구하러 고생하며 떠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삼장은 선한 성품이라 오공의 이 말에 얼굴이 귀까지 붉어졌다.
삼장이 창피함을 느끼고 있을 때,
오공은 다시 성질을 내며 철봉을 들어 요괴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요괴는 꾀를 부려 ‘해시법(解屍法)’이라는 술법을 사용하여 손오공의 공격이 닿기 전에 재빨리 도망갔고,
그 자리에 가짜 시체를 남겨 손오공의 철봉에 맞게 만들었다.
삼장은 이를 보고 겁에 질려 떨며 중얼거렸다.
“이 원숭이가 정말 버릇이 없구나!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다니!”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오해 마시고 이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번 보십시오.”
오정이 삼장을 부축하여 다가가 보니,
향미밥이라던 것은 꼬리가 달린 긴 구더기들이 가득했고,
볶음 면이라던 것은 개구리와 두꺼비가 가득해 온통 바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삼장은 그제야 오공의 말을 조금 믿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서 팔계가 못마땅한 듯 불만을 터뜨리며 말했다.
“스승님, 이 여자분은 이곳 농가의 여인인데, 밭으로 음식을 나르다 우리를 만났습니다.
어찌 이 여자가 요괴라고 생각하십니까?
형님이 무거운 철봉을 휘두르며 시비를 걸고 다가가 일부러 한 방을 날려 죽인 겁니다.
스승님께서 그 조임 주문을 외울까 두려워
일부러 눈속임을 해서 음식이 구더기와 개구리로 보이게 만들어
스승님이 주문을 외우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지요.”
불길하게도 삼장은 이 말을 듣고 팔계의 속임수에 넘어갔다.
정말로 팔계의 말에 속아 손을 모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공이 외쳤다.
“머리가 아픕니다, 아픕니다! 제발 주문을 멈추세요.
할 말이 있으니 들어보십시오.”
삼장이 말했다.
“할 말이라니?
출가한 몸은 언제나 선심을 품어야 하고,
땅을 쓸 때에도 개미를 해칠까 걱정하며,
등불에 날아드는 나방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걸음마다 사람을 해치려 하느냐?
그런 마음으로 경전을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어서 돌아가거라.”
손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저를 어디로 돌아가라 하십니까?”
삼장이 말했다.
“너를 제자로 두고 싶지 않다.”
오공이 대답했다.
“스승님이 저를 제자로 두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그럼 서천까지 무사히 가시지 못할 겁니다.”
삼장이 말했다.
“내 목숨이 하늘에 달린 것이니, 요괴가 나를 쪄 먹든 삶아 먹든 그것도 운명이다.
설마 네가 나를 대역죄에서 구해 줄 수 있겠느냐?
어서 돌아가거라.”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저는 돌아가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스승님께 은혜를 갚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삼장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무슨 은혜를 주었다고 하느냐?”
이 말을 듣고 손오공은 급히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노손은 천궁을 어지럽혀 고난을 겪었고, 부처님께 눌려 양계산에 갇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관음보살께서 저를 구해 계를 주셨고, 스승님께서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스승님과 함께 서천까지 가지 않는다면,
은혜를 알고도 갚지 않은 비겁한 자로 천고에 이름이 오르며 비난받을 것입니다.”
사실 삼장은 자비로운 성인 승려였기에, 오공의 애원에 마음이 풀려 말했다.
“알겠다. 이번 한 번은 용서하마.
다만 다시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말거라.
만약 또다시 악행을 저지르면 이 주문을 스무 번도 넘게 외울 것이다.”
오공이 대답했다.
“서른 번을 외우셔도 좋습니다. 다만 이제 사람을 함부로 치지 않겠습니다.”
오공은 다시 삼장을 말에 태우고 따온 복숭아를 내어 드렸다.
삼장은 말을 타고 가면서 복숭아 몇 개를 먹어 허기를 채웠다.
한편, 요괴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하늘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구름 위에서 이를 갈며 손오공을 원망했다.
“몇 년간 그의 무공에 대해 소문만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헛된 말이 아니구나.
삼장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곧 음식을 먹으려 했을 것이다.
그가 고개만 숙이고 냄새라도 한 번 맡았다면 내가 바로 붙잡아 잡아 먹었을 텐데!
하필 저놈이 나타나 일을 망치고, 거의 그 봉에 맞아 죽을 뻔했으니 원통하다.
이대로 저 스님을 놓아둔다면 정말 헛수고한 셈이니,
다시 내려가 한 번 더 속여 봐야겠다.”
요괴는 다시 어둑한 구름을 내리고 전산(前山) 아래로 내려와 몸을 흔들며 변신했다.
이번에는 나이가 팔십 정도로 보이는 늙은 할머니로 변했다.
허리는 굽었고, 손에는 구부러진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한숨을 쉬며 울먹였다.
팔계는 그녀를 보자 깜짝 놀라 외쳤다.
“스승님, 큰일입니다! 할머니가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삼장이 물었다.
“누구를 찾는다는 것이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죽인 사람이 아마도 그녀의 딸일 겁니다.
저 할머니가 틀림없이 그 딸을 찾으러 온 거지요!”
오공이 말했다.
“허튼소리 하지 마라. 아까 그 여자는 열여덟 살이었는데, 이 할머니는 여든 살로 보인다.
어떻게 예순 살이 넘어 딸을 낳겠느냐?
분명 가짜다. 내가 가서 알아보마.”
오공은 성큼성큼 걸어가 요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요괴는 이렇게 변신해 있었다.
시에서 이르기를
거짓으로 할머니로 변하니,
양옆 머리칼은 눈처럼 희고,
걸음은 느릿느릿, 움직임은 비실비실.
연약하고 여윈 몸, 얼굴은 마른 채소 잎 같도다.
광대뼈는 위로 튀어나왔고,
입술은 아래로 처져 있다네.
늙은 모습이 젊은 시절과 같을 수 없으니,
온 얼굴이 연잎 주름투성이로구나.
오공은 그가 요괴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철봉을 들어 머리를 내리쳤다.
요괴는 이번에도 오공의 철봉이 닿기 직전, 다시 신령한 몸을 이용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또 하나의 가짜 시체를 남겨 산길 옆에 쓰러져 있게 만들었다.
삼장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산길 옆에 몸을 기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조임 주문을 거꾸로 스무 번이나 외웠다.
오공은 머리가 끈으로 조여진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머리가 마치 중간이 잘록한 호리병처럼 변했다.
그는 굴러다니며 아우성을 쳤다.
“스승님, 제발 주문을 멈춰 주십시오! 무슨 말이든 다 듣겠습니다!”
삼장이 말했다.
“무슨 말을 듣겠다는 것이냐?
출가한 몸은 늘 선한 말을 듣고 악행을 멀리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너를 그렇게 타일렀건만, 어찌 계속 사람을 죽이는 것이냐?
방금 한 명을 죽이고 또 한 명을 죽이다니,
대체 무슨 변명이 더 필요하단 말이냐?”
손오공이 대답했다.
“스승님, 그들은 요괴입니다.”
삼장이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 헛소리 그만해라.
세상에 그리 많은 요괴가 어디 있다는 것이냐?
너는 선한 마음이 없고 악행을 저지르려는 의도만 가득하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
오공이 대답했다.
“스승님, 저를 또 내쫓으시는군요. 가라면 가겠습니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삼장이 물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냐?”
팔계가 옆에서 끼어들어 말했다.
“스승님, 형님이 스승님과 짐을 나누자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몇 년간 스님으로 따라다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짐 보따리 속에 낡은 옷이나 헌 모자라도 두어 개 주시면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팔계의 말을 들은 오공은 화를 내며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이 돼지 같은 놈아!
내가 너같이 뾰족한 주둥이로 떠드는 녀석을 그냥 두겠느냐!
노손이 지금껏 불교를 따르며 탐욕도, 욕심도 없이 살아왔건만,
내가 언제 스승님의 짐을 탐냈다고 헛소리를 하느냐?”
삼장이 말했다.
“네가 욕심이 없다면 어째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냐?”
손오공이 대답했다.
“스승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500년 전 화과산 수렴동에서 영웅으로 군림하며 72동 요괴들을 제압했고,
부하로 4만 7천의 요괴를 거느렸습니다.
그때 제 머리엔 자금관(紫金冠)을 쓰고, 몸에는 적황포(赭黃袍)를 걸쳤으며,
허리에는 남전대(藍田帶)를 둘렀고, 발에는 구름처럼 가벼운 보운리(步雲履)를 신었습니다.
손에는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을 들고,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천궁을 어지럽혀 죄를 짓고, 머리를 깎고 승려로 살아가며 스승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제 머리엔 이 금고(緊箍)가 씌워졌는데,
이제 돌아가면 옛 고향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스승님이 저를 원치 않으신다면 이 금고를 풀어 주는 주문을 외워 주십시오.
이 금고를 풀고 다른 사람에게 씌워 주십시오.
그러면 기꺼이 돌아가겠습니다.
스승님은 이렇게도 사람의 정이 없으신 겁니까?”
삼장은 깜짝 놀라 말했다.
“오공아, 내가 받은 것은 보살께서 전해 주신 조임 주문일 뿐, 금고를 푸는 주문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오공은 실망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스승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삼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어나라. 이번만 용서하겠다.
하지만 다시는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손오공이 대답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스승님.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손오공은 삼장을 말에 태우고 길을 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삼장을 위해 따온 복숭아를 내밀었고,
삼장은 말을 타고 가면서 복숭아 몇 개를 먹어 허기를 채웠다.
한편,
요괴는 손오공의 두 번째 공격에도 죽지 않았다.
요괴는 공중에 떠올라 손오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대단한 원숭이 왕이로다!
내가 그렇게 변장을 했는데도 나를 알아보는구나.
하지만 저 스님들이 빠르게 산을 지나간다면,
이곳에서 서쪽으로 40리만 더 가면 내 통치 지역을 벗어나게 된다.
만약 다른 요괴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그놈들이 나를 비웃을 것이고,
내 마음만 더 상할 테지.
다시 내려가 한 번 더 속여 봐야겠다.”
요괴는 어둑한 바람을 타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와 몸을 흔들며 변신했다.
이번에는 늙은 할아버지로 변신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이러했다.
시에서 이르기를
희고 풍성한 머리털은 마치 팽조(彭祖) 같고,
푸른 수염은 수성(壽星)을 능가하네.
귀에는 옥 종소리가 울리고,
눈에는 황금빛 별이 반짝인다.
손에는 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몸에는 학 깃털로 만든 가벼운 옷을 걸쳤다.
손에 염주를 쥐고는,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 경문을 읊는다네.
삼장은 말을 탄 채로 할아버지로 변신한 요괴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서역은 정말 복된 땅이로구나.
저 늙으신 분께서는 길도 제대로 걸으시지 못하면서 경문을 읊고 계시다니, 얼마나 신심이 깊으신가!”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그렇게 칭찬하지 마십시오. 저건 화근(禍根)입니다.”
삼장이 물었다.
“어찌 화근이란 말이냐?”
팔계가 대답했다.
“형님이 그 딸을 죽였고, 또 그 아내를 죽였으니, 저건 분명 그의 남편이 찾아온 겁니다.
우리가 그의 손에 걸리기라도 하면, 스승님께서는 살인을 물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저는 그의 종으로 전락해 유배를 갈 것이고, 사형제는 노역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은 신출귀몰한 술법으로 도망칠 테니, 결국 고생은 우리 셋이 다 떠맡게 되겠지요.”
팔계의 말을 들은 오공은 웃으며 말했다.
“이 돼지 같은 녀석, 헛소리를 늘어놓아 스승님을 겁주는구나.
내가 다시 가서 확인해 보겠다”
오공은 철봉을 몸에 숨기고 요괴에게 다가가 물었다.
“노인장,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길을 걷다가 어째서 경문을 읊고 계시는지요?”
요괴는 오공을 그냥 평범한 중으로 착각하고 대답했다.
“스님, 저는 이 산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평생 선행을 베풀고 공양을 드리며, 경을 읽고 부처님을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불행히도 자식이 없어 딸 하나만 키웠고, 사위를 들였습니다.
오늘 아침 그들이 밭에 점심을 가지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한 것 같습니다.
제 아내도 그들을 찾으러 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그들의 흔적을 찾으러 왔습니다.
만약 죽었다면, 뼈라도 수습해 돌아가 묻으려 합니다.”
손오공은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호랑이들의 조상이거늘, 너는 어째서 소매 속에 귀신을 숨겨 나를 속이려 하느냐?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나는 네가 요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요괴는 손오공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말문이 막혔다.
오공은 철봉을 꺼내들고 생각했다.
‘그냥 놔두면 저놈이 틈을 타 스승님을 낚아챌 것이다.
그럼 또다시 힘들게 구출하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스승님이 주문을 외우실 것을 생각하면 선뜻 공격하기 어렵구나.
그렇다고 안 치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텐데…
그래, 치자.
일단 죽이고 난 뒤에는 입담으로 스승님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다.’
오공은 주문을 읊조리며 부근의 토지신과 산신을 불러 말했다.
“이 요괴가 세 번이나 우리 스승님을 속이려 했소.
이번엔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오.
그러니 나를 돕고 하늘에서 이 일을 증명해 주시오.”
신들은 손오공의 명령에 따라 구름 위에서 증인이 되었다.
오공은 철봉을 들어 요괴를 내려치며 결국 그의 목숨을 끊었다.
요괴의 신령한 기운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삼장은 말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팔계는 옆에서 비웃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한 형님이시군요. 하루에 세 사람이나 때려죽이시다니요.”
삼장은 주문을 외우려 했고, 이를 본 오공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스승님, 멈추세요! 제발 멈추세요!
먼저 그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 보시지요.”
그곳에는 한 줌의 흰 해골만 남아 있었다.
삼장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오공아, 방금 죽은 사람이 어찌 이렇게 금세 해골로 변한단 말이냐?”
오공이 대답했다.
“이자는 잠복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백골귀신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악행을 저지르려 했으니, 제가 그를 처치했을 뿐입니다.
그의 척추에는 ‘백골부인’(白骨夫人)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삼장은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믿으려 했지만, 팔계가 옆에서 말했다.
“스승님, 형님이 워낙 힘이 세고 잔인해서 사람을 죽인 겁니다.
그런데 형님이 당신이 주문을 외울까 두려워서 일부러 이렇게 해골로 변신한 거예요.
눈속임을 해서 스승님을 속이려는 거죠.”
삼장은 팔계의 말에 귀가 얇아 다시 주문을 외웠고,
오공은 머리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길가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스승님, 멈추세요! 제발 멈추세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삼장이 말했다.
“이 고집불통 원숭아!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수행자는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선행은 봄날의 풀처럼 당장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하루하루 늘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악행은 칼을 가는 숫돌처럼 금방 닳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마다 줄어든다.
네가 이 황량한 들판에서 사람을 세 명이나 때려죽였다.
아무도 고발하지 않고 증인도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이런 짓을 했다면 대재앙이 닥쳤을 것이다.
이제 너는 가거라!”
오공이 대답했다.
“스승님, 제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시는군요.
저 녀석은 분명 스승님을 해치려는 요괴였습니다.
제가 오히려 해를 끼칠 자를 처단했는데,
스승님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팔계의 헛소리를 믿고 저를 자꾸만 내쫓으시니,
정말 억울합니다.
‘일이 세 번 반복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대로 제가 떠나지 않으면 스스로 부끄러운 인간이 될 겁니다.
좋습니다, 저는 떠나겠습니다.
다만, 제 말을 꼭 기억해 두십시오.
제가 떠나면 스승님 곁엔 더는 믿을 만한 자가 없을 것입니다.”
삼장은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믿을 만한 유일한 자라면 팔계와 오정은 아니라는 말이더냐?”
오공은 삼장의 말을 듣고 눈물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아, 참으로 억울합니다!
스승님, 제가 장안을 떠난 뒤로 유백흠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섰고,
양계산(兩界山)에서 스승님께 구출되어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깊은 동굴과 험한 숲을 헤치며 요괴들을 처단했고,
팔계와 오정을 데려왔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스승님께서는 제 진심을 알아주지 않으시고 저를 내쫓으시다니,
이러니 ‘새가 없으면 활을 버리고,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이 금고아(緊箍兒) 주문이 없다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삼장이 대답했다.
“내가 다시는 주문을 외우지 않겠다.”
손오공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씀도 믿기 어렵습니다.
만약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해 팔계와 사승이 스승님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땐 분명 제 이름을 부르며 다시 주문을 외우실 겁니다.
이제 저는 떠나면 천리 밖에서도 머리가 아플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차라리 떠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삼장은 오공의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나 말에서 내려왔다.
그는 오정에게 짐 보따리에서 종이와 붓을 꺼내 오라고 지시했다.
계곡 아래에서 물을 떠오고,
돌 위에서 먹을 갈아 한 장의 면직서를 작성하더니 손오공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 못난 원숭아, 이 문서를 받아라.
너를 더 이상 제자로 두지 않을 것이며, 다시 너와 만나게 된다면 나는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손오공은 서둘러 면직서를 받아들고 말했다.
“스승님, 그런 맹세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떠나겠습니다.”
그는 문서를 접어 소매 속에 넣고는 삼장에게 다시 공손히 말했다.
“스승님, 제가 한동안 스승님을 모셨고, 또 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길을 중단하고 떠나야 하니, 제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스승님, 잠시 앉아 제 인사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습니다.”
삼장은 몸을 돌려 손오공을 보지 않았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착한 승려로서 너 같은 악인의 절을 받을 수 없다.”
오공은 삼장이 자신을 외면하자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머리카락 세 가닥을 뽑아 입김을 불며 외쳤다.
“변하라!”
곧 세 명의 손오공이 나타나 본체를 포함해 네 명이 삼장을 둘러싸고 절을 올렸다.
삼장은 이리저리 피하려 했으나 도망칠 수 없었고, 결국 인사를 받아야만 했다.
오공은 벌떡 일어나 몸을 털어내며 머리카락을 모두 회수했다.
그는 오정을 향해 말했다.
“현명한 동생, 넌 참 좋은 자야.
하지만 팔계의 헛소리를 조심해야 한다.
여행 중에는 더욱 신중해야 할 거야.
만약 요괴가 스승님을 붙잡는 일이 생기면, 네가 이렇게 말하거라.
‘손오공은 그분의 첫 번째 제자다.
서쪽의 모든 요괴들은 그의 힘을 잘 알고 있으니, 스승님을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를 듣고 삼장이 말했다.
“나는 선한 수행자다. 너 같은 나쁜 원숭이의 이름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이제 떠나거라.”
대성은 삼장이 세 번이나 마음을 돌릴 기회를 주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더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장에게 작별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슬픔을 참으며 오정에게 당부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풀숲에서 눈물을 훔치고, 두 발로 덩굴을 짓밟으며 떠났다.
하늘과 땅을 누비듯 회전하며,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나드는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고, 순식간에 옛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억울함을 삼키고 스승을 떠난 채, 구름을 타고 곧장 화과산(花果山) 수렴동(水簾洞)으로 돌아갔다.
홀로 쓸쓸하게 흐느끼며 하늘을 날던 중, 갑작스레 귀를 울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손오공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동양대해(東洋大海)의 파도가 일으킨 굉음이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그는 다시 삼장을 떠올렸고, 두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구름을 멈추고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다가 마침내 발길을 옮겼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