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제 2장 노편도유(怒鞭督郵)와 환관 주살(誅殺) 모의

원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시도입니다.

해당 번안의 모든 저작권은 Redstonewisdom.com에 있습니다.

그 어떤 번안도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틈틈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충분히 좋아지고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편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 2장

《장비가 분노하여 도유를 매질하고, 하진이 환관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다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동탁(董卓)은 자(字)가 중영(仲顈)이며, 농서군(隴西郡) 임도현(臨洮縣) 출신이다.

관직은 하동태수(河東太守)에 이르렀으며, 본래부터 성격이 거만하고 오만한 인물이었다.

그날 유비(玄德)를 무시하고 예우하지 않자, 장비(張飛)는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유비와 관우(關公)가 급히 말리며 말했다.

“그는 조정의 명을 받은 관리인데, 어찌 우리가 멋대로 죽일 수 있겠느냐?”

그러자 장비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럼 저 따위 놈 밑에서 명령을 받아야 한단 말이오?

그런 건 죽어도 못하오!

두 형님께서 여기에 남고자 하신다면, 저는 다른 곳으로 가겠소!”

그러자 유비가 말했다.

“우리 셋은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형제인데 어찌 흩어질 수 있겠느냐?

차라리 모두 함께 다른 데로 가자.”

장비가 그 말을 듣고서야 노여움을 조금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나마 이 분을 조금은 삭일 수 있겠소.”


그리하여 세 사람은 그날 밤 바로 병사를 이끌고 주준(朱雋)에게 몸을 의탁하러 갔다.

주준은 그들을 후하게 맞이하였고, 병력을 합쳐 장보(張寶)를 토벌하러 나섰다.

그 무렵, 조조(曹操)는 황보숭(皇甫嵩)과 함께 장량(張梁)을 상대하며 곡양(曲陽)에서 대전 중이었다.

이쪽에서 주준은 장보를 공격하였다.

당시 장보는 8~9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산 뒤쪽에 주둔해 있었다.

주준은 유비를 선봉으로 임명하여 적과 맞서게 하였다.

장보는 부장 고승(高昇)을 말에 태워 도전하게 하였다.

이에 유비는 장비를 출전시켰고, 장비는 말을 몰아 창을 높이 치켜들고 달려나가 고승과 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비는 고승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유비는 이 틈을 타 곧장 군을 휘몰아 돌격하였다.

그러자 장보는 말 위에서 머리를 풀고 칼을 들어 요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즉시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고, 하늘에서 검은 기운이 내려오더니,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인마(人馬)가 나타나 공격해 오는 듯한 환영이 펼쳐졌다.

유비는 급히 퇴각 명령을 내렸고, 군중은 당황하여 크게 혼란에 빠졌으며, 결국 패하여 돌아오게 되었다.

유비는 주준과 함께 대책을 의논했고, 주준이 말했다.

“저들이 요술을 부리니, 내일은 돼지와 양, 개의 피를 준비시키도록 하시오.

군사들은 산 위에 매복시켰다가 적이 다가오면 높은 곳에서 그 피를 뿌려 요술을 막으시오.

그러면 필시 저들의 술법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오.


유비(玄德)는 주준(朱雋)의 계책에 따라 지시에 따랐다.

관우(關公)와 장비(張飛)에게 각각 병사 1천 명씩을 나눠 주어, 산 뒤쪽 높은 언덕 위에 매복하게 하고,

돼지·양·개 피와 더불어 더러운 물건들을 풍성히 준비하게 했다.

다음 날, 장보(張寶)는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며 군을 이끌고 도전해 왔다.

유비는 이에 맞서 나아갔다.

양군이 교전하자, 장보는 또다시 요술을 부려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고, 모래와 돌이 날리며, 검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게 하였다.

그 검은 구름 속에서 우르르 수많은 인마(人馬)가 쏟아져 내려오는 듯했다.

유비는 곧 말을 돌려 후퇴했고, 장보는 이를 틈타 병사들을 몰아 추격해 왔다.

그들이 매복한 산길을 지나려는 찰나,

관우와 장비의 복병이 신호포를 쏘아 올렸고,

준비해둔 더러운 짐승의 피와 오물들을 한꺼번에 하늘을 향해 뿌렸다.

그 즉시, 하늘을 뒤덮던 허깨비—

종이 인형과 풀로 만든 말들이 마치 연기처럼 떨어졌고,

천둥과 번개는 곧 멎었으며, 모래바람도 사라졌다.

장보는 요술이 풀린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퇴각하려 하였으나,

왼쪽에서 관우, 오른쪽에서 장비가 진격했고,

뒤에서는 유비와 주준의 본대가 몰려오며 협공하였다.

황건적은 대패하였다.

그때 유비는 ‘지공장군(地公將軍)’이라는 깃발을 발견하고,

즉시 말을 몰아 장보를 향해 달려갔다.

장보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지만,

유비의 화살에 왼팔을 맞고 부상을 입은 채 양성(陽城)으로 도망쳐 들어가 버티며 나오지 않았다.

주준은 군사를 이끌고 양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면서, 한편으론 황보숭(皇甫嵩)의 소식을 탐문해 알아보게 하였다.


정찰병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황보숭 장군께서 대승을 거두셨습니다.

조정은 동탁(董卓)이 잇따라 패전하자 그를 물리고, 장군께 그 자리를 대신하게 했습니다.

장군께서 전선에 도착했을 때, 장각(張角)은 이미 병사한 상태였고,

그 동생 장량(張梁)이 병력을 이어받아 맞섰으나,

연전연승하며 일곱 차례의 전투 끝에 곡양(曲陽)에서 장량을 참수하였습니다.

그 뒤 장각의 관을 파헤쳐 시신을 베고 머리를 베어 수도로 보냈으며,

잔여 병력은 모두 항복하였습니다.

조정은 이에 황보숭 장군을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승진시키고,

기주목(冀州牧)의 직책도 겸임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장군께서 조정에 장계를 올려 노식(盧植)의 억울함을 해명하며 공적을 인정했고,

이에 따라 조정은 노식을 원래의 관직으로 복귀시켰습니다.

조조(曹操) 역시 공을 인정받아 제남상(濟南相)으로 임명되었으며,

곧 부임하기 위해 군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준은 즉시 군사들을 독려하여 더욱 힘을 다해 양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적의 상황은 점점 절박해졌고,

황건적 진영의 장수 엄정(嚴政)이 그 틈을 타 장보를 찔러 죽인 뒤,

그의 머리를 들고 항복하였다.

주준은 이렇게 수 개의 군현을 평정하고, 공적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때 황건적의 잔당 가운데 세 명—조홍(趙弘), 한충(韓忠), 손중(孫仲)—이 수만의 무리를 모아 다시 봉기하였다.

그들은 바람처럼 들이닥쳐 약탈하고 불을 지르며, “장각(張角)의 복수를 하겠다”고 외쳤다.

조정은 주준(朱雋)에게 명하여, 방금 승리를 거둔 군사를 이끌고 이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주준은 조서를 받들고 군을 이끌고 진격하였다.

당시 반란군은 완성(宛城)을 점거하고 있었다.

주준이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자, 조홍은 부장 한충을 내보내 맞서 싸우게 하였다.

주준은 유비(玄德), 관우(關羽), 장비(張飛)에게 명하여 성의 남서쪽 모퉁이를 공격하게 하였고,

이에 한충은 정예 병력을 이끌고 남서쪽으로 몰려와 맞섰다.

그 틈을 타 주준은 철기병 2천 명을 이끌고 성의 동북쪽을 기습하였다.

적은 성을 빼앗길까 두려워 급히 남서쪽 방어를 중단하고 되돌아갔다.

그러자 유비는 적의 배후를 기습하였고, 적군은 크게 패하여 성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주준은 병력을 사방으로 나누어 완성을 포위하였고,

성 안은 식량이 끊겨 굶주림이 심해졌다.

그러자 한충은 사람을 보내 항복을 청하였다.

그러나 주준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유비가 말했다.

“예전에 한 고조(유방)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항복자를 받아들여 순종을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째서 한충의 항복을 거절하십니까?”

그러자 주준이 대답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오.

예전 진(秦)나라와 항우가 맞서던 시절에는 천하가 혼란스러워 백성들이 누구를 주군으로 섬겨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항복하는 자를 받아들이고 포상하여 귀순을 장려했던 것이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온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 상태요.

오직 황건적만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때,

만약 그들의 항복을 받아준다면, 오히려 선량한 자들을 낙심하게 만들 뿐이오.

적이 형세가 유리할 때는 마음껏 약탈하고, 불리해지면 곧장 항복하는 식이라면,

이는 끝없는 도적의 야망을 부추기는 것일 뿐, 올바른 계책이 아니오.”

그러자 유비가 다시 말했다.

“도적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취지는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방이 완전히 포위되어, 적은 항복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결사항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으며, 수만 명이 한 마음이 되면 상대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차라리 동남 방향의 포위를 일부 해제하고, 서북쪽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면,

적은 스스로 성을 버리고 도망치려 할 것이며, 더는 사생결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바로 잡으면 됩니다.”


주준은 유비의 의견이 옳다고 여겨, 곧장 동남쪽의 포위망을 철수시키고,

모든 병력을 서북쪽으로 집중시켜 공격을 개시하였다.

과연 한충은 그 틈을 타 군을 이끌고 성을 버리고 도망쳤고,

주준은 유비, 관우, 장비와 함께 삼군을 이끌고 추격하여 몰살시켰다.

그 과정에서 화살로 한충을 사살하였고, 나머지 잔당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한충을 토벌하던 주준(朱雋)의 군이 막 적을 추격하던 참에,

황건적 잔당 조홍(趙弘)과 손중(孫仲)이 새로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 교전이 벌어졌다.

조홍의 병력이 워낙 컸기에 주준은 잠시 군을 물려 퇴각하였다.

그러자 조홍은 기세를 타고 다시 완성(宛城)을 점령하였다.

주준이 성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꾸리고 다시 공격을 준비하던 중,

동쪽에서 또 하나의 군대가 접근해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선봉에는 용맹스러운 장수가 있었으니, 이마가 넓고 얼굴이 크며, 몸은 호랑이 같고 허리는 곰 같았다.

그는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출신으로 성은 손(孫), 이름은 견(堅), 자는 문대(文臺)였다.

손무자(孫武子)의 후손이라 전해진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전당(錢塘)에 갔다가, 해적 열 명 남짓이 상인의 재물을 약탈한 뒤

강가에서 전리품을 나누는 광경을 목격했다.

손견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도적들, 지금이라면 잡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칼을 들고 언덕 위로 달려 올라가 큰소리로 외치며 사방으로 손짓했다.

마치 병력이 뒤따르는 것처럼 연기한 것이다. 도적들은 관군이 오는 줄 알고 전리품을 내버리고 도망쳤다.

손견은 그 중 한 명을 추격하여 죽였고,

이 일로 군현에 이름이 알려져 교위(校尉)로 추천되었다.

그 후 회계(會稽)에서 요승 허창(許昌)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양명황제(陽明皇帝)’라 칭하며 수만의 병력을 모았다.

손견은 주의 사마(司馬)와 함께 용사 천여 명을 모집해, 주·군의 군대와 연합하여 이를 평정했고,

허창과 그 아들 허소(許韶)를 참수하였다.

자사 장민(臧旻)이 상주하여 손견의 공로를 조정에 보고하였고,

손견은 염독승(鹽瀆丞), 이후에는 우이승(盱眙丞), 하비승(下邳丞)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이번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고향의 젊은이들과 상인들,

그리고 회수(淮水)·사수(泗水) 일대의 정예병 1,500명을 모아

완성 전선으로 원군을 보내온 것이었다.


주준은 손견의 도착을 크게 기뻐하며 즉시 병력을 배치하였다.

손견에게는 남문 공격을, 유비(玄德)에게는 북문을,

자신은 서문을 맡아 공격하게 하고,

동문만은 도적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일부러 열어 두었다.

손견은 가장 먼저 성벽을 타고 올라가 적 20여 명을 베었고,

그 여파로 적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황건적 조홍은 창을 들고 말을 타고 돌진하여 손견을 노렸으나,

손견은 성 위에서 몸을 날려 조홍의 창을 빼앗고,

곧바로 그를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는 조홍의 말을 빼앗아 타고, 성 안을 누비며 적을 무찌르기 시작하였다.

이때 손중은 북문을 열고 병력을 이끌고 탈출하려 했지만,

그 앞에는 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손중은 싸울 의지조차 없이 달아나려 했고,

유비는 활을 들어 한 발 쏘아 손중의 몸을 명중시켜 말에서 떨어뜨렸다.

이어 주준의 본대가 뒤쫓아 몰아붙이며 적을 도륙했고,

베어낸 목이 수만에 달했고, 항복한 자는 셀 수 없었다.

이로써 남양(南陽) 일대의 수많은 군현이 평정되었다.

주준은 군사를 돌려 수도로 돌아갔고,

조정에서는 그를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임명하고, 하남윤(河南尹)의 벼슬을 더하였다.

또한 주준은 손견, 유비 등의 공적을 조정에 상주하였다.

손견은 인맥이 넓어 곧바로 다른 군의 사마로 임명되어 부임하였으나,

유비는 오랫동안 임용되지 못하고,

여전히 임명 대기를 하며 관직을 받지 못한 채 남게 되었다.


세 사람은 공을 세우고도 관직을 받지 못해 마음이 울적하고 기운이 없었다.

하릴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마침 낭중(郎中) 장균(張鈞)의 수레를 마주치게 되었다.

현덕(玄德)은 장균을 보자 곧장 나아가 자신이 황건적 토벌에서 세운 공적을 설명하였다.

장균은 크게 놀라 즉시 입궐하여 황제에게 아뢰었다.

“옛날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바로 십상시(十常侍)가 벼슬을 사고팔고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친하지 않으면 등용하지 않고,

원수에게는 반드시 해를 가하는 등의 전횡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온 천하가 어지러워졌습니다.

지금 마땅히 십상시를 참수하여 그 머리를 남교(南郊)에 내걸고,

사신을 보내 천하에 널리 알리며, 공을 세운 자들에게는 크게 상을 내려야

온 나라가 다시 평정될 것입니다.”

그러자 십상시는 곧장 상주하여 황제에게 아뢰었다.

“장균은 군주를 속이려 합니다.”

황제는 화가 나 무사에게 명령하여 장균을 쫓아내게 하였다.

십상시들은 서로 논의하였다.

“이건 분명 황건적을 토벌하고도 벼슬을 받지 못한 자들이 불만을 품고 꾸민 일이다.

당장은 작은 벼슬 하나라도 내리도록 하자.

나중에 다시 처리해도 늦지 않다.”

그리하여 유비는 정식으로 정주(定州) 중산부(中山府) 안희현(安喜縣) 위(尉)로 임명되었고,

정해진 날을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유비는 병사를 해산시키고 고향으로 돌려보낸 후,

자신은 관우, 장비와 더불어 친위병 스무 명 남짓만 거느리고 안희현에 도착하여 현위로서 직무를 시작하였다.

부임 후 한 달 동안 백성들에게 털끝 하나도 해치지 않고 청렴하게 지냈으며,

백성들은 그의 정직함과 덕에 감동하였다.

현직에 있을 동안, 유비는 관우·장비와 함께 식사는 같은 상에서,

잠은 한 침상에서 잤고,

많은 사람들 앞에 있을 때도 두 사람은 종일 곁에 서서 시중을 들며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유비가 안희현에 부임한 지 넉 달도 되지 않아 조정에서 조서를 내렸다.

“군공으로 관직에 오른 자들 중 부적절한 이들을 정리하라.”

유비는 혹시 자신도 그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였다.

때마침 도유(督郵, 감찰관)가 지방을 순시하며 안희현에 도착하였다.

유비는 곧 성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하였고,

예를 갖추어 절을 하였으나, 도유는 말 위에 앉은 채 채찍으로 슬쩍 가리키며 대답할 뿐이었다.

관우와 장비는 이를 보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역참(驛站)에 도착한 뒤, 도유는 남쪽을 향해 높은 자리에 앉고,

유비는 계단 아래에서 서서 시립하였다.

오랜 침묵 끝에 도유가 물었다.

“유현위, 그대는 어떤 출신인가?”

유비가 대답하였다.

“소인은 중산정왕(中山靖王)의 후손으로,

탁군에서 황건적을 토벌할 때 전투를 서른 차례 넘게 치러 약간의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이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유는 고함을 지르며 외쳤다.

“너는 황실의 친척이라고 사칭하고, 허위로 공적을 올렸다!

지금 조정에서는 바로 이런 무능하고 부정한 관리들을 정리하라는 조서를 내렸거늘!”

유비는 연신 “예, 예” 하며 물러났고,

곧장 돌아와 현청 관리들과 논의하였다.

현리(縣吏)들이 말하기를,

“도유가 저리 거드름을 피우는 건, 결국은 뇌물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비는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백성들에게 털끝 하나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어찌 그들에게 돈을 뜯어 그자에게 바치란 말인가?”

다음 날, 도유는 먼저 현청의 관리들을 불러

“현위가 백성을 해쳤다”고 증언하라고 강요하였다.

유비는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해명을 하려 했지만,

문 앞에서 막은 하인들이 결코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그 무렵, 장비(張飛)는 울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몇 잔 들이켜고는 말에 올라 역참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 앞에 노인 다섯, 여섯 명이 모여서 흐느끼며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비가 그 이유를 묻자, 노인들은 대답했다.

“도유(督郵)가 현청 관리들을 억지로 다그쳐서, 우리 유공(劉公)을 해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막으려고 하소연하러 왔으나, 들어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문지기들에게 쫓겨 맞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비는 크게 격노하여,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갈며,

곧장 말에서 뛰어내려 역참 안으로 들이닥쳤다.

문지기 따위로는 장비를 막을 수 없었다.

그가 곧장 후당(後堂)으로 달려가니, 도유는 마침 대청에 앉아있던 현청 관리 하나를 땅에 묶어놓고 문초 중이었다.

장비가 크게 외쳤다.

“이 백성을 해치는 도적놈아! 나를 알아보겠느냐!”

도유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장비는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아 질질 끌고 나와 현청 앞 말기둥(馬樁)에 꽁꽁 묶어버렸다.

이어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다 그의 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니,

순식간에 버드나무 채가 열 대 넘게 부러졌다.


한편, 유비(玄德)는 속이 답답하여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하에게 묻자,

“장 장군(張飛)이 누군가를 묶어놓고 현청 앞에서 몹시 때리고 있습니다.”

유비는 놀라 급히 달려나가 보았고,

그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도유가 장비에게 묶여 매질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비는 놀라 그 사정을 물었고, 장비는 씩씩거리며 외쳤다.

“이런 백성을 해치는 놈은 때려죽여도 모자라오!”

도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현덕공(玄德公), 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유비는 본래 인자한 사람이라, 장비에게 얼른 그만두라 소리쳤다.

그때 옆에 있던 관우(關羽)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형님께서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까?

그런데도 고작 작위로 현위 하나를 받았을 뿐이고,

이제 와서는 이따위 도유에게 모욕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생각건대, 가시덤불 같은 세상에 봉황이 깃들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이 자를 죽이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멀리 큰 뜻을 다시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유비는 관직을 상징하는 인수(印綬)를 풀어 도유의 목에 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백성을 해쳤으니 마땅히 죽어 마땅하나, 내 오늘은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이 인수를 돌려주고 나는 여기서 떠나겠다!”

도유는 그 길로 돌아가 정주의 태수에게 사건을 보고하였고,

태수는 문서를 올려 수도에 보고한 뒤 사람을 보내 유비를 체포하려 하였다.

이때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함께 대주(代州)의 유회(劉恢)를 찾아갔고,

유회는 유비가 한나라 황실의 종친임을 알고, 그의 신분을 숨겨주며 집에 머물게 하였다.


한편, 십상시가 중권을 쥔 뒤로 서로 결탁하여 이렇게 의논하였다.

“우리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죽여야 한다.”

조충과 장양은 황건적을 토벌한 장수들에게 금전과 선물을 요구하는 사자를 보냈고,

이에 응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조정에 탄핵해 파직시켰다.

황보숭과 주준은 이에 따르지 않았고, 조충 등은 이들을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은 조충에게 거기장군(車騎將軍)의 작위를 내렸으며,

장양을 비롯한 열세 명의 십상시 모두를 열후(列侯)에 봉하였다.

조정의 기강은 더욱 무너졌고, 백성들은 한탄과 원망을 쏟아냈다.

이때 장사(長沙) 지역에서 구성(區星)이라는 도적이 반란을 일으켰고,

어양(漁陽)에서는 장거(張舉)와 장순(張純)이 반란을 일으켰다.

장거는 스스로 천자라 칭하고, 장순은 대장군이라 자칭하였다.

조정에는 긴급한 장계가 잇따라 올라왔으나, 십상시들은 모두 그것을 숨기고 아뢰지 않았다.


어느 날, 황제가 후원에서 십상시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연회를 열고 있었는데,

간의대부(諫議大夫) 유도(劉陶)가 그대로 궁정에 들어와 황제 앞에서 통곡하였다.

황제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유도가 아뢰었다.

“천하의 위기가 눈앞에 닥쳤거늘, 폐하께서는 아직도 환관들과 술이나 마시고 계십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나라가 평온한데 무슨 급박한 일이 있다는 말이냐?”

유도는 말했다.

“사방에서 도적들이 들고일어나 주군을 침범하고 백성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재앙은 십상시들이 벼슬을 팔고 백성을 해치며, 임금을 속이고 조정을 농단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직한 신하들은 모두 물러났으니, 화는 이미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에 십상시들이 모두 갓을 벗고 황제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아뢰었다.

“대신들이 우리를 용납하지 않으니, 저희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목숨만은 살려 주시고, 시골에 물러가게 해주십시오.

집안의 모든 재산을 내어 군자금에 보태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모두 큰 소리로 울었다.

황제는 노하여 유도에게 말했다.

“너도 궁내에 가까운 사람을 두고 있지 않은가? 어찌 유독 나만 용납하지 못하느냐!”

그러고는 무사들을 불러 유도를 끌어내 죽이라 명하였다.

유도는 외쳤다.

“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가엾은 한실(漢室) 천하가—사백 년의 역사가—이 하루 아침에 끝나고 마는구나!”


무사들이 유도를 끌어내 사형을 집행하려 하던 그때,

한 대신이 큰 소리로 외쳐 제지하였다.

“칼을 거두시오! 내가 나아가 간하겠소!”

사람들이 바라보니, 사도(司徒) 진탐(陳耽)이었다.

그는 곧장 궁 안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간하였다.

“유간의(劉諫議)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이시려 하십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근신(近臣)을 모함하고, 짐을 능멸하였기 때문이다.”

진탐이 말했다.

“천하 백성들은 모두 십상시의 고기를 씹고 싶어 하나이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부모처럼 아끼시니 어찌된 일이옵니까?

저들은 털끝만한 공도 없이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하물며 봉서(封諝) 등은 황건적과 결탁하여 내란을 꾀하였거늘,

폐하께서 스스로 돌이켜 살피지 않으시면, 사직이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 것이옵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봉서가 반란을 꾀했다는 증거는 분명하지 않다.

십상시 가운데 어찌 충신이 한둘도 없겠는가?”

그러자 진탐은 머리를 섬돌에 부딪치며 간하였다.

황제가 노하여 그를 끌어내라고 명하였고, 유도와 함께 감옥에 가두었다.

그날 밤, 십상시들은 옥중에서 이들을 죽일 계략을 꾸몄다.

그리고 다음 날, 황제의 명을 가장하여 손견(孫堅)을 장사태수로 임명하고 구성(區星)을 토벌하게 하였다.


오십 일도 지나지 않아, 손견이 승전을 보고하였다.

강하(江夏)는 평정되었고, 이에 조정은 손견을 오정후(烏程侯)에 봉하였다.

또한 유우(劉虞)를 유주목(幽州牧)에 임명하고, 병력을 이끌어 어양(漁陽)의 장거(張舉)와 장순(張純)을 토벌하게 하였다.

이때 대주(代州)의 유회(劉恢)가 유비를 천거하는 편지를 보내 유우에게 추천하니, 유우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유비를 도위(都尉)에 임명하고, 병력을 이끌게 하여 적의 근거지로 직행하게 하였다.

수일간의 대전이 벌어졌고, 유비는 적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는 데 성공하였다.

장순은 성질이 사납고 포악하여, 장병들의 마음이 떠나 있었고,

마침내 그의 부하 장수가 그를 찔러 죽인 뒤 머리를 베어 바치고 군사를 이끌고 항복하였다.

장거는 형세가 불리하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에 어양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유우는 유비의 큰 공을 조정에 아뢰었고,

조정은 이전에 도유(督郵)를 채찍질한 죄를 사면하고, 그를 하밀승(下密丞)에 임명하였으며, 이어 고당위(高堂尉)로 승진시켰다.

공손찬 또한 유비의 공적을 조정에 다시 표문으로 올렸고,

그를 별부사마(別部司馬)로 삼아 평원현령(平原縣令)을 맡게 하였다.

유비는 평원에 부임하자, 제법 자금과 군마를 갖추게 되었고, 옛 기세를 다시 떨치게 되었다.

유우는 도적을 평정한 공으로 태위(太尉)에 봉해졌다.


중평 6년(서기 189년) 여름 4월,

영제(靈帝)의 병세가 위중해지자,

대장군 하진(何進)을 궁궐로 불러들여 뒷일을 의논하였다.

하진은 원래 도살업을 하던 집안 출신이었으나,

그 누이가 궁에 들어가 귀인이 되고, 황자 변(辯)을 낳자 황후로 책봉되었다.

그 덕분에 하진은 권세를 장악하고 중임을 받게 되었다.

당시 영제는 또다른 후궁 왕미인(王美人)을 총애하였는데,

그녀는 또 다른 황자 협(協)을 낳았다.

하황후는 이를 시기하여, 독을 써서 왕미인을 죽이고 말았다.

황자 협은 동태후(董太后)의 궁에서 길러졌다.

이 동태후는 영제의 생모로, 해독정후(解瀆亭侯) 유장(劉萇)의 부인이었다.

본래 환제(桓帝)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조정에서는 유장의 아들인 유굉(劉宏)을 맞이하여 황제로 세웠으니, 곧 영제였다.

영제가 대통(大統)을 이은 뒤,

생모였던 동씨를 궁으로 맞이하여 태후로 존숭하였던 것이다.


동태후는 한때 황제에게 황자 협을 태자로 세우도록 권하였다.

영제 역시 협을 더욱 편애하였고, 실제로 그를 태자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병세가 깊어져 위중해진 그때,

중상시(中常侍) 건석(蹇碩)이 아뢰었다.

“만일 협을 태자로 세우고자 하신다면,

우선 하진을 주살하여 후환을 없애야 하옵니다.”

영제가 그의 말을 옳게 여겨,

하진을 궁궐로 부르라는 명을 내렸다.

하진이 궁문에 이르렀을 때,

사마(司馬) 반은(潘隱)이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궁에 들어가셔서는 안 됩니다!

건석이 대감께 모반을 꾸미고 있사옵니다!”

하진은 크게 놀라 급히 사가로 돌아갔고,

제후들과 대신들을 불러모아, 환관들을 모두 죽이려 하였다.

이때 좌중에서 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섰다.

“환관의 세력은 충제(沖帝)·질제(質帝)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조정에 깊숙이 뿌리내려 퍼져 있습니다.

이를 어찌 모두 한 번에 없앨 수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기밀이 새어나간다면,

족멸(族滅)의 화를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디 신중히 판단하소서.”

하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니,

그는 전군교위(典軍校尉) 조조(曹操)였다.

하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어린 놈이 어찌 조정의 대사를 아느냐!”


하진이 갈팡질팡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사마 반은(潘隱)이 다시 달려와 말했다.

“황제께서 이미 붕어하셨습니다.

지금 건석(蹇碩)은 십상시(十常侍)들과 의논하여,

황제의 서거 사실을 비밀로 하고 발상(發喪)을 하지 않은 채,

거짓 조서를 꾸며 하국구(何國舅, 하진)를 궁궐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후환을 미리 끊고자 하는 계략이며,

황자 협(協)을 즉위시키려는 속셈입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정에서 사자(使者)가 도착하였다.

그는 황제의 조서를 전하며 말했다.

“하진은 즉시 입궁하여 후사를 정하라.”

이에 조조가 말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먼저 정통 황제를 세우고,

그 다음에 역적 무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진이 외쳤다.

“누가 나와 함께 황제를 세우고 역적을 토벌하겠느냐?”

그러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제게 정예 병사 오천 명만 주십시오.

문을 돌파하여 궁궐 안으로 들어가,

새 황제를 책봉하고, 모든 환관들을 제거하여

조정을 깨끗이 바로잡고, 천하를 안정시키겠습니다!”

하진이 자세히 바라보니,

그는 사도(司徒) 원봉(袁逢)의 아들이자,

원외(袁隗)의 조카, 이름은 원소(袁紹), 자는 본초(本初)였으며,

당시 그는 사예교위(司隸校尉)로 있었다.

하진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어림군(御林軍) 오천 명을 배정하였다.

원소는 전신에 갑옷을 갖춰 입었고,

하진은 하옹(何顒), 순유(荀攸), 정태(鄭泰) 등 삼십여 명의 대신들을 이끌고 궁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제의 관 앞에서 황자 변(辯)을 떠받들어 즉위시키니,

이로써 황제(소제, 少帝)가 탄생하였다.

★ 참고:

이 즉위는 훗날 역사상 소제(少帝) 유변(劉辯)으로 기록됩니다.

하진은 국구(國舅), 즉 황후의 오라버니로, 당시 조정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원소는 훗날 원술과 함께 군웅할거 시대를 여는 인물입니다.

“사예교위”는 수도 주변을 감독하는 직책으로, 당시 정치 경찰력과도 유사한 권한이 있었습니다.


백관들이 황제에게 절하며 예를 마치자,

원소(袁紹)는 궁으로 들어가 건석(蹇碩)을 체포하려 하였다.

건석은 놀라 급히 달아나 어화원(御花園, 황실 정원)의 꽃 그늘 아래로 숨었으나,

같은 환관이던 중상시(中常侍) 곽승(郭勝)에게 살해되었다.

건석이 거느리던 금군(禁軍)은 모두 무장을 내려놓고 투항하였다.

이에 원소가 하진(何進)에게 말했다.

“중관(환관)들이 서로 패거리를 이루고 있으니,

오늘 이 기세를 몰아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그러자 장양(張讓) 등은 사태가 급박해졌음을 알고 급히 황태후 하씨(何后)를 찾아가 울며 호소하였다.

“처음에 대장군을 해치고자 계책을 꾸민 자는 오직 건석 한 사람뿐이옵니다.

저희는 그 일과 무관한데, 대장군께서 원소의 말을 듣고 우리까지 모두 주살하려 하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태후가 말했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하진을 불렀다.

그리하여 하태후는 하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너와 나는 모두 미천한 집안 출신이 아니냐.

네가 오늘날 이처럼 부귀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장양(張讓) 같은 자들이 궁중에서 힘을 써주었기 때문이니라.

건석이 불충한 것은 이미 죽음으로 갚았거늘,

어찌 남의 말만 듣고 모든 환관을 없애려 하느냐?”


하진은 하태후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와 조정 대신들에게 말했다.

“건석은 나를 해치려 음모를 꾸몄으니, 그 집안을 멸문(滅門)하겠다.

그러나 그 외의 자들까지 함부로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자 원소가 나섰다.

“풀을 베고 뿌리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일의 화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그만 말하라.”

이 말을 듣고 조정의 여러 신하들은 모두 물러갔다.


이튿날, 하태후(何太后)는 명을 내려 하진(何進)에게 참록상서사(參錄尙書事)의 직책을 내렸다.

그 밖의 대신들도 모두 관직을 하사받았다.

한편, 동태후(董太后)는 환관 장양(張讓) 등을 불러 들여 비밀리에 회의를 열었다.

동태후가 말했다.

“하진의 누이는 본래 내가 궁중으로 불러들여 신분을 높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녀의 아들이 황제 자리에 오르자,

조정 안팎의 신하들까지 모두 하씨 일가의 세력으로 가득 찼으니, 그 권세가 지나치게 무거워졌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장양이 아뢰었다.

“전하께옵서 직접 조정에 나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시고, 황자 협(協)을 진류왕(陳留王)으로 봉하십시오.

또 국구(國舅)인 동중(董重)에게 큰 직책을 내려 군권을 쥐게 하시고,

저희 환관들을 중용하신다면, 다시 큰일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태후는 그 말에 크게 기뻐하였다.

동태후는 그다음 날 아침, 조정을 열고 칙령을 내려 황자 협을 진류왕으로 봉하고,

동중을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임명하였다.

또 장양 등 환관들을 조정의 정사에 직접 참여하게 하였다.

하태후는 동태후가 전횡을 일삼는 것을 보고 우려하여, 궁중에 연회를 열고 동태후를 초청하였다.

술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하태후가 일어나 술잔을 받쳐들고 두 번 절하며 말했다.

“저희는 모두 궁중의 여인일 뿐입니다.

정사를 함께 의논하고 조정에 간여하는 것은 본디 마땅하지 않습니다.

옛날 여후(呂后)가 권력을 움켜쥐었을 때,

그 친족이 천여 명이나 멸족을 당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궁궐 안에서 깊이 조용히 머물고,

나라의 대사는 조정의 원로 대신들에게 맡기는 것이 국가를 위한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받아들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동태후는 몹시 분노하였다.

“네가 왕미인(王美人)을 독살하고 질투로 가득 찬 마음을 품더니,

이제 아들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과, 네 오라비 하진의 세력을 믿고 감히 망발을 하는구나!

내가 표기장군(동중)에게 명을 내리면 네 오라비의 목을 베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는 일에 불과하다!”

이에 하태후도 화가 치밀어 올라 맞받아쳤다.

“나는 좋은 뜻으로 충언을 드린 것뿐인데, 어찌 분노로 대응하십니까?”

그러자 동태후는 냉소하며 쏘아붙였다.

“너희 집안은 본디 푸줏간에서 고기나 팔던 하찮은 집안이 아니더냐?

그런 처지가 무슨 정사를 논하겠다는 것이냐!”


궁중의 두 태후, 하태후(何太后)와 동태후(董太后)는 서로 권력을 놓고 다투었다.

이에 장양(張讓) 등 환관들은 각각 자신의 편에 유리하게 두 태후를 설득하려 애썼다.

그러던 중 하태후는 밤중에 하진(何進)을 궁으로 불러들여, 동태후와 환관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하진은 궁에서 나와, 삼공(三公, 삼정승)을 불러 함께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조정을 열고 신하들로 하여금 이렇게 상주하게 하였다.

“동태후는 본래 번왕의 비(藩妃)로서, 오랫동안 궁에 머무르는 것은 적절치 않사오니,

하간(河間)으로 거처를 옮겨 안치하시옵소서.”

하진은 즉시 명을 내려 동태후를 하간으로 호송하게 하였고,

동시에 금군(禁軍)을 동원해 표기장군(驃騎將軍) 동중(董重)의 저택을 포위하고 인수(印綬)를 회수하라고 명했다.

동중은 일이 급박함을 알고, 후당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안 사람들이 슬피 울자, 병사들은 그제야 흩어졌다.

장양과 단규(段珪)는 동태후의 세력이 무너진 것을 보고,

황급히 금은보화와 갖가지 진귀한 물건을 바치며

하진의 동생 하곡(何曲)과 그들의 어머니 무양군(舞陽君)에게 뇌물을 주고 아첨하였다.

이들은 다시 하태후 곁에 드나들며 좋은 말로 환관들을 감싸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십상시(十常侍)는 다시 궁중의 총애를 회복하게 된다.


그 해 6월, 하진은 몰래 사람을 시켜 하간 역정(驛庭)에서 동태후에게 독약을 먹여 죽였고,

이후 관을 수레에 실어 문릉(文陵)에 안장하였다.

그 후 하진은 병을 핑계로 외출을 삼가며 조정을 나오지 않았다.

이에 사예교위(司隸校尉) 원소(袁紹)가 하진을 찾아와 말했다.

“장양, 단규 등이 밖으로 떠도는 말을 퍼뜨려 ‘하진이 동태후를 독살한 것은 정권을 잡기 위한 사전 음모’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환관들을 일망타진할 적기입니다.

과거 두무(竇武)도 환관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기밀을 지키지 못해 도리어 죽임을 당했지 않습니까?

지금 대장군께서 지휘하는 병력과 장수들은 모두 용맹하고 충성심 있는 인재들입니다.

그들이 온 힘을 다한다면 조정 정비는 시간 문제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이니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진은 말끝을 흐리며 답했다.

“좀 더 신중히 상의해 보겠소.”

이때, 하진의 측근 중 누군가가 이 대화를 몰래 장양에게 고하였다.

그리고 장양은 다시 하묘(何苗)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뇌물을 크게 바쳤다.

하묘는 하태후에게 아뢰었다.

“대장군은 황제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인자함을 잃고,

오직 죽이고 억누르려는 일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동태후를 죽인 데 이어, 지금은 십상시마저 제거하려 하니, 이는 스스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길이옵니다.”

하태후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 하진은 다시 궁으로 들어가 하태후에게 아뢰었다.

“중전께 아뢰옵니다. 지금이야말로 환관들을 제거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자 하태후가 말했다.

“내관들이 궁중을 관할하는 것은 한나라 이래의 전통입니다.

선제(先帝, 영제)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분 곁에서 모시던 신하들을 너는 모조리 죽이려 하는 것입니까?

이는 조상의 사당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니,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하진은 본디 결단력이 부족한 인물이라, 태후의 말을 듣고는 그저 “예… 예…” 하고 물러났다.

궁 밖에서 기다리던 원소(袁紹)가 그를 맞으며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은 진행하셨는지요?”

하진이 대답했다.

“태후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네… 어찌하면 좋겠는가?”

원소는 크게 분노하며 말했다.

“지금은 조정이 위태롭고, 환관들이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사방의 영웅들을 불러 모아 군사를 이끌고 수도로 진입해,

환관 무리를 전부 없애야 할 때입니다.

일이 이렇게 급한데, 태후라고 해서 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진은 감탄하며 말했다.

“그대의 계책이 정말 훌륭하도다!”

하진은 곧바로 사방의 제후와 지방 관찰사들에게 격문(檄文)을 띄워, 군사를 이끌고 낙양(洛陽)으로 모이라고 명하였다.


그때, 하진의 주부(主簿)였던 진림(陳琳)이 나서서 말렸다.

“절대 그리하셔선 안 됩니다.

흔히 말하길, ‘눈을 가리고 참새를 잡으려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찮은 일조차 거짓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나라의 대사를 어찌 속임수로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대장군께서는 황제의 신임을 얻고 군권을 쥐고 있으며,

위세는 용맹스럽고 권력은 하늘을 찌릅니다.

환관들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큰 화덕에 털을 던져 태우는 것처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니 곧바로 실행에 옮기고 권한을 행사해 과감히 결단하셔야지,

도리어 외지의 군벌들을 불러들여 수도 근처로 몰려오게 한다면,

그들은 제각기 다른 속셈을 품고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칼날을 거꾸로 쥐어 적에게 쥐여주는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조정을 더 큰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하지만 하진은 진림의 말에 비웃으며 말했다.

“에이, 겁쟁이 같은 말일세!”

그때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박수를 치며 웃어 말했다.

“이 일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도 쉬운 일인데, 무엇 하러 길게 논의하십니까?”

하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그 인물은 바로 조조(曹操)였다.



 

댓글 남기기

error: 어허 !! 불펌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