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제 1장 도원결의와 황건적 토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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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 1장

《도원에서 호걸들이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을 토벌하여 첫 공을 세우다》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도도히 흐르는 장강(長江)의 물결은 동쪽으로 쉬지 않고 흘러,

그 물결 속에 수많은 영웅들을 씻어 떠나보낸다.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 모두 돌이켜 보면 허망할 뿐,

푸른 산만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으니,

석양은 또 몇 번이나 붉게 저물었는가.

백발의 어부와 나무꾼이 강가에서,

가을 달과 봄바람을 무심히 바라보는구나.

탁주 한 병을 앞에 두고 기쁘게 서로 만나니,

고금(古今)의 얼마나 많은 일들이

모두 웃으며 나누는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가는가.


무릇 천하의 큰 흐름이란, 오랫동안 나뉘어 있으면 반드시 합쳐지고, 오래도록 합쳐져 있으면 다시 나뉘게 마련이다.

주나라 말엽에 일곱 나라가 서로 다투었으나, 결국 진나라에 통일되었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었고, 결국 한나로 다시 합쳐졌다.

한나라는 고조(高祖)가 백사를 베고 일어나 천하를 통일한 뒤로, 후에 광무제(光武帝)가 다시 중흥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에 이르러 천하는 다시 셋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혼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개 한나라의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두 황제에서 시작되었다.

환제는 선량한 신하들을 탄압하고 환관을 중용했다.

환제가 세상을 떠난 후 영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두무(竇武)와 태부 진번(陳蕃)이 함께 보필하였다.

이때 환관 조절(曹節) 등이 권력을 휘두르자, 두무와 진번은 이들을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일이 미리 새어나가, 도리어 이들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로 인해 환관들의 권세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건녕(建寧) 2년(169년) 4월 보름날, 헌제(獻帝)가 온덕전(溫德殿)에 올라 어좌에 앉으려는 순간,

갑자기 전각의 모서리에서 거센 돌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한 마리 큰 청색 뱀이 대들보 위에서 날아 내려와 황제의 의자 위에 휘감겨 앉았다.

황제가 놀라 쓰러지자 좌우의 신하들이 급히 그를 궁궐 안으로 옮겼으며,

대신들과 관리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잠시 후 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직후 갑자기 천둥과 폭우가 몰아쳤고 우박까지 내렸다.

이런 날씨가 한밤중까지 계속되며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부서졌다.

건녕(建寧) 4년(171년) 2월에는 수도 낙양(洛陽)에 지진이 일어났으며,

또 바닷물이 넘쳐 해안가의 주민들이 큰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 죽었다.

광화(光和) 원년(178년)에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일이 있었다.

같은 해 6월 초하루에는 길이가 십여 장(丈)이나 되는 검은 기운이 궁중의 온덕전(溫德殿) 안으로 날아들었다.

가을 7월에는 옥당(玉堂)에 무지개가 나타났으며, 오원(五原)의 산과 언덕이 전부 무너져 내렸다.

이와 같은 불길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황제는 조서를 내려 대신들에게 이러한 재앙과 이변이 생긴 원인을 물었다.

이에 의랑(議郎) 채옹(蔡邕)이 상소를 올려,

“궁궐 안에 무지개가 떨어지고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괴이한 현상은 후궁과 환관들이 정사를 어지럽힌 데 원인이 있습니다”라며 직설적으로 지적하였다.

황제가 상소문을 읽고 깊이 탄식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런데 뒤에 있던 환관 조절(曹節)이 몰래 이것을 훔쳐보고는 그 내용을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렸다.

결국 조절은 다른 일을 트집잡아 채옹을 죄에 빠뜨려 그를 궁에서 내쫓아 시골로 보내 버렸다.

그 후 장양(張讓), 조충(趙忠), 봉서(封諝), 단규(段珪), 조절(曹節), 후람(候覽), 건석(蹇碩), 정광(程曠), 하운(夏惲), 곽승(郭勝) 등 10명의 환관들이 서로 무리 지어 악행을 저질렀다.

이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십상시(十常侍)’라 불렀다.

황제는 그중에서도 장양(張讓)을 가장 신임하여 그를 ‘아버지(阿父)’라고 불렀으며,

이로 인해 조정의 정치는 날이 갈수록 부패해졌다.

결국 천하의 민심은 혼란해졌고, 각지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거록군(鉅鹿郡)에 장각(張角), 장보(張寶), 장량(張梁)이라는 삼형제가 있었다.

이들 중 장각은 원래 과거시험에 낙방한 선비였다.

장각은 어느 날 산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푸른 눈에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한 백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장각을 한 동굴로 불러서 천서(天書) 세 권을 전해 주며 말했다.

“이 책의 이름은 『태평요술(太平要術)』이다.

네가 이것을 얻었으니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에 교화를 펼치고, 널리 백성들을 구원하도록 하라.

그러나 만약 사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반드시 악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장각이 절하며 노인의 이름을 묻자, 노인은 대답했다.

“나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다.”

말을 마치자 노인은 맑은 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장각은 이 책을 얻고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바람과 비를 부르는 술법을 익히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태평도인(太平道人)’이라 불렀다.

중평(中平) 원년(184년) 정월, 전국적으로 역병이 크게 퍼졌다.

장각은 부적과 물을 나누어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며 스스로 ‘대현량사(大賢良師)’라고 칭했다.

장각에게는 500명이 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각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부적을 그리고 주문을 외워 주었다.

그 후로 신도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장각은 36개의 거점을 세웠는데, 큰 거점은 1만 명 이상, 작은 거점은 6~7천 명이었다.

각 거점마다 지도자를 두고 장군이라 불렀다.

그들은 “푸른 하늘(한나라)이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황건적)이 일어나리라!”는 말을 퍼뜨렸고,

또 “갑자년(甲子年)에는 천하가 크게 길할 것이다.”라고 하며 사람들에게 흰 흙으로 각자의 집 대문에 ‘갑자(甲子)’ 두 글자를 써 붙이도록 했다.

청주(靑州), 유주(幽州), 서주(徐州), 기주(冀州), 형주(荊州), 양주(揚州), 연주(兗州), 예주(豫州) 등 팔주의 백성들이 집집마다 대현량사 장각의 이름을 받들게 되었다.

이때 장각은 자신의 일당인 마원의(馬元義)를 보내 몰래 금은과 비단을 가지고 환관 봉서(封諝)를 매수하여 내부에서 호응하도록 만들었다.

장각은 두 동생과 함께 논의했다.

“얻기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민심이다.

지금 민심이 이미 우리에게 향해 있으니, 이 기회를 타서 천하를 차지하지 않으면 실로 아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몰래 황색 깃발을 제작하고 거병할 날을 정해 두는 한편, 제자 당주(唐州)를 보내 편지를 가지고 봉서에게 알리도록 했다.

그러나 당주는 곧장 관청으로 가서 이 일을 밀고해 버렸다.

황제는 즉시 대장군 하진(何進)을 불러 군사를 동원해 마원의의 목을 베고, 이어 봉서 등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장각(張角)은 계획이 탄로 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바로 군사를 일으켰다.

장각은 스스로를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 칭하고, 장보(張寶)는 ‘지공장군(地公將軍)’, 장량(張梁)은 ‘인공장군(人公將軍)’이라고 칭했다.

장각은 군중에게 크게 선언했다.

“이제 한나라의 운명은 끝났다! 위대한 성인이 나타났으니, 너희는 모두 하늘의 뜻을 따라 태평성세를 이룩하라!”

이에 전국 각지의 백성들이 누런 수건(황건)을 머리에 두르고 장각을 따라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수가 40~50만에 이르렀다.

황건적의 기세가 워낙 강대하여, 정부군은 마주치기만 하면 바람 앞의 풀처럼 쓰러졌다.

이 소식을 듣고 대장군 하진(何進)은 급히 황제에게 상주하여 신속히 조서를 내려 각 지방에 방어태세를 갖추고 반란군을 토벌해 공을 세우도록 했다.

동시에 중랑장(中郎將) 노식(盧植), 황보숭(皇甫嵩), 주준(朱雋)을 보내 각각 정예병을 거느리고 세 갈래로 나누어 황건적을 토벌하게 했다.


한편 장각이 이끄는 한 무리는 유주(幽州) 지역으로 침공해 들어왔다.

당시 유주의 태수는 유언(劉焉)이었는데, 그는 강하군(江夏郡) 경릉(竟陵) 출신으로 한나라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었다.

유언은 황건적이 침공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교위(校尉) 추정(鄒靖)을 불러 작전을 논의했다.

추정은 말했다.

“적군의 숫자는 많고 아군의 숫자는 적습니다. 태수께서는 급히 의병을 모집해 적을 막아야 합니다.”

유언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즉시 방을 붙여 의병을 모집했다.

이 모집 방이 탁현(涿縣)에 이르러, 탁현에 있던 한 명의 뛰어난 영웅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 인물은 책을 특별히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성격은 너그럽고 말수가 적었으며, 기쁨과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본래 큰 뜻을 품고 있었고, 천하의 호걸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장은 일곱 척 다섯 치였으며, 귀는 어깨에 닿고, 양손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였고, 눈동자는 자기 귀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얼굴은 갓을 씌운 옥처럼 윤택하고,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 붉었다.

그는 중산정왕 유승(中山靖王 劉勝)의 후손이며, 한나라 경제(景帝)의 현손이었다.

성은 유(劉), 이름은 비(備), 자는 현덕(玄德)이었다.

옛날 유승의 아들 유정(劉貞)이 한나라 무제 때 탁록정후(涿鹿亭侯)에 봉해졌으나,

금전을 잘못 처리한 일로 작위를 박탈당했고,

그 후손이 이곳 탁현(涿縣)에 남게 되었다.

현덕의 할아버지는 유웅(劉雄), 아버지는 유홍(劉弘)인데, 유홍은 과거에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관직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현덕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극진히 섬겼으며,

가세가 가난하여 짚신을 팔고 돗자리를 짜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의 집은 본현인 탁현의 누상촌(樓桑村)에 있었다.

집의 동남쪽에는 높이가 오장(丈)이 넘는 큰 뽕나무가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나뭇잎이 무성하여 마치 수레의 덮개처럼 보였다.

어떤 상인이 그 나무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집에서는 틀림없이 귀한 인물이 나올 것이다.”


현덕이 어렸을 적, 마을 아이들과 그 큰 뽕나무 아래에서 놀다가 말했다.

“내가 훗날 천자(天子)가 되면, 저 수레덮개(車蓋) 같은 나무 아래에서 어가(御駕)를 멈출 것이다.”

삼촌 유원기(劉元起)는 이 말을 듣고 놀라며 말했다.

“이 아이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현덕 집이 가난한 것을 알고 자주 생계를 도왔다.

현덕이 열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는 그를 유학시키기 위해 떠나보냈고,

그는 정현(鄭玄), 노식(盧植)에게 배운 적이 있었으며, 공손찬(公孫瓚) 등과 친구가 되었다.

유언(劉焉)이 군사를 모집하기 위해 방을 붙였을 당시, 현덕의 나이는 이미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날 그는 방을 보고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 한 사람이 호통치듯 말했다.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태지 않고 어째서 탄식만 하는가?”


현덕(玄德)은 그 말을 들고 돌아보았더니,

그 사람은 키가 여덟 척에, 표범 같은 머리에 둥그런 눈, 제비처럼 날렵한 턱에 범 같은 수염을 지니고 있었으며,

목소리는 우레 같고 기세는 내달리는 말 같았다.

현덕은 그 외모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나는 성은 장(張), 이름은 비(飛), 자는 익덕(翼德)이라 하오.

대대로 탁군(涿郡)에 살아왔으며, 농지도 좀 있고, 술을 팔고 돼지를 잡으며 살아왔소.

천하의 호걸들과 교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오.

아까 그대를 보니 방을 보고 한숨을 쉬기에 궁금하여 말을 건 것이오.”

그러자 현덕이 말했다.

“나는 본래 한나라 종실로, 성은 유(劉), 이름은 비(備)요.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그 무리를 토벌해 백성을 안정시키고자 뜻을 품고 있었소.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어찌할 수 없으니, 한탄한 것일 뿐이오.”

장비가 말하길,

“내게는 약간의 재물이 있으니,

마땅히 마을의 용사들을 모집하여 그대와 함께 대업을 도모하고자 하오.

어찌 생각하시오?”

이에 현덕은 크게 기뻐하며, 장비와 함께 마을의 주점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던 중, 문밖에서 한 거한이 수레를 끌고 주점 앞에 멈추더니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는 주점을 지키는 술지기에게 소리쳤다.

“어서 술 한 잔 내오시오! 곧 군에 지원하러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하오.”

현덕이 그 사람을 보니, 키는 아홉 척, 수염은 두 척이나 되었고,

얼굴은 붉은 대추 같고,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 붉었으며,

눈은 붉은 봉황의 눈, 눈썹은 누운 누에 같은 굵은 형상이었다.

그 풍모가 엄숙하고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에 현덕은 그를 자리에 초대하며 이름을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나는 성은 관(關), 이름은 우(羽), 자는 수장(壽長)이라 하나, 훗날 운장(雲長)으로 고쳤소.

하동(河東) 해량(解良) 사람이지요.

본래 고향에서 권세가 있던 자가 사람들을 업신여겨 횡포를 부리기에 내가 그를 죽였고,

그로 인해 몸을 피해 떠돌며 강호를 헤맨 지 5~6년이 되었소.

이번에 이곳에서 군사를 모집해 도적을 토벌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하러 온 길이오.”

현덕은 자신이 품고 있는 뜻을 관우에게 이야기했고, 관우는 크게 기뻐했다.

세 사람은 곧 함께 장비의 농장으로 가서 대의를 함께 도모하게 되었다.


그러자 장비(張飛)가 말했다.

“우리 농장 뒤에 복숭아나무 정원이 하나 있는데, 지금 꽃이 한창입니다.

내일 그곳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고, 우리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어 마음을 합쳐 큰 뜻을 도모합시다.”

이에 현덕(玄德)과 운장(雲長)이 함께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다음 날, 복숭아 정원에서 흑소와 백마를 잡아 제사에 쓸 희생과 제물 등을 마련하였다.

세 사람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한 뒤, 다음과 같이 맹세를 맺었다.

“우리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세 사람은 비록 성씨는 다르지만,

오늘부터 의형제로 맺어졌으니,

마음과 힘을 모아 난세에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잡을 것이다.

위로는 조정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평안케 할 것이며,

같은 날에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으나,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하노라.

하늘과 땅이 이 마음을 굽어살펴주소서.

만약 의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벌할지어다!”

맹세를 마친 뒤에는 현덕을 큰형으로, 관우를 둘째로, 장비를 셋째로 삼았다.

천지에 제사를 올린 뒤에는 소를 잡고 술상을 차려 마을의 용사들을 불러 모아 함께 복숭아 정원에서 크게 취하도록 마셨다.

다음 날, 무기를 갖추려 했으나 아쉬운 점은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세 사람이 이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달려와 보고했다.

“손님 두 사람이 사람을 거느리고 말 떼를 몰아 이 농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덕이 말하였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를 도우는 것이오!”

세 사람은 농장 밖으로 나가 이들을 맞이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중산(中山) 출신의 큰 상인이었는데,

한 사람은 장세평(張世平), 또 한 사람은 소쌍(蘇雙)이었다.

이들은 매년 북쪽으로 가서 말을 사들이는 무역상이었으나,

최근 도적이 일어나자 급히 돌아오던 길이었다.

현덕은 그들을 농장 안으로 모시고 술과 음식을 베풀며 자신이 도적을 토벌하여 백성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뜻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좋은 말 오십 필을 선물하고,

또 은전 오백 냥과 빛나는 무기 제작용 정제철(鑌鐵) 천 근을 함께 내주며 이들을 응원했다.

현덕은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장인을 불러 자신의 무기로 쌍고검(雙股劍)을 만들게 했고,

운장은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만들었는데, 일명 ‘냉염거(冷艷鋸)*’라 불렸으며 무게는 82근이나 되었다.

장비는 장팔점강모(丈八點鋼矛: 1장 8척의 강철창)을 만들었다.

세 사람 모두 온몸을 덮는 갑옷을 갖추고, 마을의 의용병 500여 명을 이끌고 교위 추정(鄒靖)을 찾아갔다.

추정은 이들을 유주의 태수 유언(劉焉)에게 인도했다.

세 사람이 유언 앞에 나아가 인사한 뒤 각각 이름을 밝히자, 현덕이 자신의 가계를 말하였다.

유언은 무척 기뻐하며, 현덕을 조카로 인정하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누군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황건적 장수 정원지(程遠志)가 군사 오만을 거느리고 탁군(涿郡)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유주 태수 유언(劉焉)은 교위 추정(鄒靖)에게 명하여,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세 사람에게 병사 오백 명을 맡기고 적을 물리치러 가게 하였다.

현덕과 두 형제는 기꺼이 군사를 이끌고 출진하여, 곧장 대흥산(大興山) 아래에 이르러 적군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곳에 모인 황건적들은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이마에는 누런 천을 둘렀으며, 대오를 갖추고 있었다.

양군이 서로 대치하자, 유비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서고, 좌우로는 관우와 장비가 각각 따랐다.

유비는 채찍을 들어 높이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라를 배반한 역적들아! 어찌 어서 항복하지 않느냐!”


정원지는 이 말에 크게 분노하여, 부장 등모(鄧茂)를 먼저 출전시켰다.

그러자 장비는 키보다 더 긴 장팔사모(丈八蛇矛)를 들고 앞으로 튀어나가,

창을 휘둘러 단번에 등모의 가슴팍을 찔렀다.

등모는 피를 뿜으며 말에서 뒤집혀 떨어졌다.

정원지는 부장이 쓰러진 것을 보고, 말 위에서 칼을 휘두르며 직접 장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관우가 큰 도(刀)를 휘두르며 말을 몰아 날듯이 맞섰다.

정원지는 이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으나,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관우의 도(刀)에 허리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다음과 같이 시로 찬양하였다.

영웅의 날카로운 기개가 오늘 드러났도다.

한 번은 창(矛)을, 또 한 번은 도(刀)를 시험하니

처음 출전에서부터 그 위세가 드러났으며,

장차 삼국을 나눌 자격을 이름부터 새겼도다.


적병들은 정원지(程遠志)가 참살당하는 것을 보자, 모두 창끝을 거꾸로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현덕(玄德)은 군을 휘몰아 추격하였고, 항복하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렇게 하여 유비 일행은 크게 승리하고 돌아왔다.

유언(劉焉)은 몸소 나와 이들을 맞이하고, 군사들에게 상을 내리며 노고를 치하했다.

다음 날, 청주(靑州) 태수 공경(龔景)에게서 문서가 도착했다.

황건적이 청주를 포위하고 있으며 곧 성이 함락될 위기라 하며, 급히 원군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유언은 이 일로 현덕과 상의했다. 이에 현덕이 말하였다.

“제가 구원하러 가겠습니다.”

유언은 곧 추정(鄒靖)에게 병사 5천을 맡기고, 유비, 관우, 장비와 함께 청주로 향하게 했다.

황건적은 원군이 도착한 것을 보고 군사를 나누어 혼전으로 맞섰다.

이에 맞서 싸우던 유비 일행은 결국 병력이 적어 서른 리 물러나 진을 쳤다.

진영에 돌아온 유비는 관우와 장비에게 말했다.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반드시 기습 병력을 써야 승산이 있다.”

이에 관우에게 병사 천 명을 주어 왼쪽 산속에 매복하게 하고,

장비에게도 병사 천 명을 주어 오른쪽 산에 숨게 한 뒤,

신호로 징을 치면 양측에서 동시에 나오도록 하였다.


다음 날, 유비는 추정과 함께 북을 울리며 진군하였다.

황건적은 이를 보고 즉시 맞서 싸웠고, 유비는 군을 이끌고 일부러 후퇴했다.

황건적은 이를 기회로 여기고 세차게 추격했는데, 마침내 산고개를 넘는 순간—

유비 쪽에서 신호로 징을 울렸다.

곧이어 좌우 산에 숨어 있던 관우와 장비의 병력이 동시에 나타났고,

유비의 본대도 방향을 바꾸어 반격에 나섰다.

세 방향에서 벌어진 협공에 황건적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유비 일행은 이들을 몰아붙여 청주성 아래까지 추격하였다.

이때 태수 공경도 성에서 민병을 이끌고 나와 지원하였고, 황건적은 완전히 대패했다.

죽은 자가 매우 많았으며, 이로써 청주 포위전은 마침내 풀리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유비를 칭송하며 이런 시를 지었다.

책략을 짜고 전투를 판가름하는 데 신과 같은 능력이 있었고,

두 마리 범이라 해도 이 한 마리 용 앞에서는 물러서야 하리.

처음 세상에 나왔을 뿐인데도 큰 공을 세우니,

마땅히 세 나라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었노라.


공경(龔景)이 전투 후 군사들에게 보상하고 위로를 마치자, 추정(鄒靖)은 본래 주둔지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유비(玄德)가 말했다.

“요즘 중랑장 노식(盧植) 장군이 광종(廣宗)에서 황건적 수괴 장각(張角)과 교전 중이라 들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노식 장군에게 배운 바 있기에, 그를 도우러 가고자 합니다.”

이에 추정은 본군을 이끌고 돌아가고, 유비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함께 원래 이끌던 병사 500명을 거느리고 광종으로 향했다.

노식의 군영에 도착하자 유비는 장막에 들어가 절하며 예를 갖추고, 도움을 청하러 온 뜻을 자세히 밝혔다.

노식은 매우 기뻐하며 유비를 군막 앞에 머물게 하고 지휘를 받게 하였다.


이때 장각이 거느린 황건적 병력은 15만 명, 노식은 5만 명의 병력으로 광종에서 대치 중이었다.

양군은 아직 승패를 가리지 못한 상태였다.

노식은 유비에게 말했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 장각의 본대를 포위 중이네.

그런데 그의 동생 장량(張梁)과 장보(張寶)는 영천(潁川)에서 황보숭(皇甫嵩), 주준(朱雋)과 맞서고 있다 하네.

자네는 본래 데리고 온 병사들과 내가 따로 보내줄 관군 1천 명을 함께 이끌고 영천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고,

적절한 때를 보아 공격하게.”

유비는 이 명을 받아 즉시 군을 이끌고 밤을 새며 영천으로 향했다.

그때 황보숭과 주준은 군사를 이끌고 적을 막고 있었는데,

장보와 장량이 연이어 전투에서 밀리자 장사(長社)로 후퇴하여 풀로 진영을 엮어 진을 치고 있었다.

황보숭은 주준과 상의하며 말했다.

“적이 풀을 엮어 진을 세웠으니, 불을 써서 공격하면 좋겠소.”

이에 병사들에게 명하여 각자 짚단 한 묶음을 들고 몰래 숨어 매복하게 했다.

그날 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2경(밤 9~11시) 무렵, 일제히 불을 질렀다.

황보숭과 주준은 각기 병사를 이끌고 적진을 동시에 공격하였고,

불길이 하늘을 뒤덮자 적은 크게 놀랐다.

말에 안장을 얹을 틈도, 갑옷을 입을 새도 없이 도망쳤다.

날이 새도록 추격이 이어졌고, 장량과 장보는 가까스로 패잔병을 거두어 달아났다.


그때 갑자기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났는데, 모두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서 한 장수가 말을 타고 앞장서 길을 막아섰다.

그 장수는 키가 일곱 척쯤 되었고, 눈매는 가늘고 길었으며 수염이 길었다.

그는 당시 관직으로 기도위(騎都尉)를 지내고 있었고,

패국(沛國) 초군(譙郡) 출신으로, 이름은 조조(曹操), 자는 맹덕(孟德)이었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은 원래 성이 하후(夏侯)였으나,

중상시(中常侍) 조등(曹騰)의 양자가 되면서 조씨 성을 따르게 된 인물이다.

조숭에게서 조조가 태어났고, 어릴 적 이름은 아만(阿瞞), 또 한 이름은 길리(吉利)였다.

조조는 어린 시절부터 사냥과 유흥을 즐겼고, 노래와 춤을 좋아했으며, 책략과 기지를 지닌 아이였다.

조조의 숙부는 그가 방탕하게 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를 아버지 조숭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조숭이 이를 꾸짖자, 조조는 꾀를 내어 숙부가 찾아오자마자 일부러 바닥에 쓰러져 중풍에 걸린 척 연기했다.

숙부는 놀라 조숭에게 달려가 알렸고, 조숭이 급히 달려왔을 때 조조는 멀쩡히 일어났다.

조숭이 물었다.

“숙부 말로는 네가 중풍에 걸렸다는데, 지금은 괜찮으냐?”

조조는 태연히 대답했다.

“저는 본래 그런 병이 없습니다. 다만 숙부께 사랑을 받지 못해 거짓말을 한 것뿐입니다.”

조숭은 그 말을 믿었고, 그 뒤로 숙부가 조조의 허물을 말해도 더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조조는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대에 교현(橋玄)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조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하가 장차 혼란해질 터이니, 하늘이 낸 인물이 아니면 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천하를 안정시킬 자는 그대일지도 모르오.”

또 남양(南陽)의 하옹(何顒)도 조조를 보고 말하였다.

“한나라 왕조는 곧 무너질 것이고, 천하를 안정시킬 인물은 바로 이 사람이오.”

또한, 여남(汝南)의 허소(許劭)는 사람의 성품을 간파하는 통찰력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조조가 그를 찾아가 물었다.

“내가 어떤 인물로 보이오?”

허소는 대답하지 않다가, 조조가 다시 묻자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태평한 세상에서는 유능한 신하가 되고, 난세에는 간악한 영웅이 될 사람이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기뻐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관이 되었고, 이후 낙양 북부의 도위(都尉)로 임명되었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읍의 네 성문에 다섯 가지 색깔의 곤장 수십 자루를 세워 놓았고,

법을 어긴 자가 귀족이든 평민이든 가리지 않고 벌을 주었다.

한 번은 중상시 건석(蹇碩)의 숙부가 밤에 칼을 차고 다니다가 조조에게 적발되어, 곧바로 곤장으로 다스려졌다.

이로 인해 조정 안팎의 누구도 조조의 법 집행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위명은 크게 떨치게 되었다.

그 뒤 그는 둔구현령(頓丘縣令)을 지냈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로 임명되어 기병과 보병 5천을 이끌고 영천(潁川) 전선에 합류하였다.

때마침 장량과 장보가 패주하고 있었고, 조조는 길을 막아 선 뒤 이들을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만여 명의 적을 베고, 수많은 깃발, 북, 말과 전리품을 노획했다.

장량과 장보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도망쳤다.

조조는 그 뒤 황보숭(皇甫嵩), 주준(朱雋)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곧장 병사를 이끌고 다시 장보와 장량을 추격하러 떠났다.


한편 유비(玄德)가 관우(關羽), 장비(張飛)를 이끌고 영천(潁川)으로 달려가던 중,

곳곳에서 함성과 살육 소리가 들려오고, 불길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치솟고 있었다.

급히 군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황건적이 패하고 흩어진 뒤였다.

유비는 곧 황보숭(皇甫嵩)과 주준(朱雋)을 찾아가 문안을 드리고,

노식(盧植)의 안부를 물으며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황보숭이 말했다.

“장량(張梁)과 장보(張寶)는 이미 기세가 꺾이고 병력도 소진되었소.

그들은 반드시 광종(廣宗)으로 가서 장각(張角)에게 합류하려 할 것이니,

현덕께서 어서 밤을 새워 그쪽으로 가 돕는 것이 좋겠소.”


유비는 이 말을 듣고 곧 명을 받아 병사를 이끌고 길을 되돌아 광종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길 한가운데서 군사들이 수송하는 수레 행렬과 마주쳤다.

수레 한가운데에는 죄인을 태운 큰 철창 수레(檻車)가 있었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이는 다름 아닌 노식(盧植)이었다.

유비는 크게 놀라 급히 말에서 뛰어내려 안장을 넘고 달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노식은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장각을 포위하고 거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네.

하지만 장각이 요술을 부려 쉽게 이기지 못하였지.

그때 조정에서 황문시랑(黃門侍郎: 황제의 비서관이자 측근에서 명령을 전달하던 중요한 직책) 좌풍(左豐)을 보내 상황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그가 나에게 뇌물을 요구하더군.

내가 말하기를, ‘지금도 군량이 부족한데, 어찌 남은 돈이 있어 천자의 사신을 접대하겠소?’라고 하였지.

그러자 좌풍은 노하여 조정에 이렇게 아뢰었네.

‘노식이 높은 진을 쌓고 싸우지도 않으며, 군의 사기를 꺾고 태만하기만 하다’고 말이네.

이로 인해 조정이 크게 노해 나를 문책하려 하였고,

중랑장 동탁(董卓)을 보내 내 군을 대신 지휘하게 하고,

나는 수도로 압송되어 죄를 묻게 되었네.”


장비(張飛)는 노식(盧植)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하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노식을 호송하던 군사들을 참수하여 구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유비(玄德)는 급히 말렸다.

“조정에는 조정 나름의 공정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어찌 감히 경솔하게 움직이려 하느냐?”

결국 군사들은 노식을 에워싸고 그대로 떠나갔고, 구출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관우(關公)가 말했다.

“노 중랑장께서 체포되셨으니, 우리가 의지할 장수가 따로 없게 되었소.

이대로 가봐야 헛수고일 뿐이니, 차라리 탁군(涿郡)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유비는 그 말이 옳다 여겨, 곧 병사를 이끌고 북쪽을 향해 돌아갔다.


길을 떠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아, 산 너머에서 갑자기 땅이 진동할 듯한 요란한 함성이 들려왔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와 함께 말을 달려 높은 언덕 위로 올라 상황을 살폈다.

멀리서 한나라 군이 크게 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편으로는 온 산과 들을 덮을 정도의 황건적 무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깃발 위에는 큼직하게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유비는 이를 보고 곧 외쳤다.

“장각(張角)이 틀림없다! 지금 당장 맞서 싸워야 한다!”


유비(玄德), 관우(關羽), 장비(張飛) 세 사람은 곧장 말을 달려 병력을 이끌고 돌진해 나갔다.

당시 장각(張角)은 막 동탁(董卓)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 기세를 타고 계속 추격해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 사람이 돌격해오자, 장각의 군대는 크게 혼란에 빠졌고, 마침내 50여 리를 패주하게 되었다.

세 사람은 동탁을 구출하여 진영으로 데려왔다.

동탁은 이들을 보고 물었다.

“그대들은 지금 무슨 관직에 있는가?”

그러자 유비가 대답했다.

“저희는 아직 벼슬이 없는 백성(白身)입니다.”

이 말을 들은 동탁은 그들을 하찮게 여기며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유비 일행이 나가자, 장비는 얼굴을 붉히며 크게 분노했다.

“우리가 직접 목숨을 걸고 싸워서 저 자를 구했건만, 저자는 어찌 이토록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놔둔다면 내 이 분을 참지 못하겠소!”

장비는 즉시 칼을 들고 동탁의 장막 안으로 쳐들어가 그를 죽이려 했다.

바로 이때 사람들은 이렇게 한탄하곤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권세를 따르니,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구나.

누가 무명의 진짜 영웅을 알아보랴?

아, 익덕(翼德, 장비) 같은 속 시원한 인물이여,

세상의 배은망덕한 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통쾌하랴!

과연 동탁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뒷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냉염거(冷艷鋸)‘는 관우의 무기인 청룡언월도의 별명으로,

각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매우 시적이고 무시무시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차갑고 고운 톱‘ 이라는 뜻입니다. 각 한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冷 (찰 냉): ‘차갑다’, ‘서늘하다’는 뜻입니다.

무기에서는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냉혹함과 살기, 또는 잘 벼려진 강철 칼날의 차갑고 서슬 퍼런 느낌을 의미합니다.

艷 (고울 염): ‘곱다’, ‘아름답다’, ‘요염하다’는 뜻입니다.

무기에 이 글자를 쓴 것은 매우 독특한 표현입니다. 이는 칼날이 뿜어내는 섬뜩하고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鋸 (톱 거): ‘톱’을 의미합니다.

이 무기는 도(刀)이지 톱(鋸)이 아니지만, ‘톱’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 파괴력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베는 것을 넘어, 적의 갑옷이나 뼈까지 톱처럼 잘라내고 찢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절삭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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